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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맹드 Dec 12. 2024

5. 허들 넘은 날

어리석은 결혼은 하기 싫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님~ T라고 합니다."

"오 그래 반갑다."


40년 만에 딸의 남자친구를

처음 소개받은 아빠는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친화력 좋은 T였지만

왠지 아빠 앞에서는

가볍게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 덕에 얼마간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둘을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결혼하라고 재촉하던 아빠가

실제로 딸의 남친을 맞이할 때 어떤 모습일지,

입담 좋T가

과연 아빠 앞에선 어떤 단어들을 골라 대화할지

궁금했다.


저 멀리 정박한 예인선 내려

우리 쪽으다가오고 있는

아빠의 긴장된 실루엣을 보면서

입꼬리가 씰룩댔다.

마치 재미있는 영화가 시작된 것처럼.


별 우려 없이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잘 할거야'라는 두 사람에 대한 믿음 덕택일 것이었다.



아빠는 50년째 배를 타고 계시다.

젊은 날에는 남미 대륙까지 가셔서 참치와 오징어를 잡으셨고,

년전부터는 우리나라 근해 위주로

예인선을 타신다.


초등학교 때 아빠 직업란에 '선장'을 쓰고 나면

왠지 모를 특별함이 내 인생에 부여되는 것 같았다.

고향이 바다마을인데도 불구하고

아빠가 선장인 친구들은 몇 없었다.


하지만

회계사로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아빠가 선장이라는 사실이

특별함을 한도초과한,

내 커리어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뭐라고 한 적 없지만,
알게 모르게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고 있던
열등감...은 아니었을까?


같은 대학에 같은 직업을 가진 학교 선배들은

10명 중 9명이 수도권 출신이었고

나머지 1명 마저 세무사 부모님을 두었었다.


우리는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과 엄연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난 마음에 조금씩 선을 긋기 시작했다.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내 부모의 직업.

내 부모의 앞으로의 인생.


그런 피해의식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른다섯에 제 발로 들어가고 만

계급시장(맞선 시장)에서

난 아마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들이 나의 일부분을 선택적으로 좋아해 주면 그만일까?

나를 온전히 좋아해야만,

내가 통째로 받아들여져야만

진정한 관계 아닐까?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는 말은,

나와 앞으로를 함께하고 싶다는 말은

결국

나의 과거도 모두 통째로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말과 같았다.


"너와 너의 부모님이 걸어온 길,
정말 멋지구나."

난 남자들로부터
이런 고백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듯

'내 콧대가 높아서 혹은 자존심이 세서

결혼 못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아무도 넘지 못했던 허들은

바로 내 마음속의 열등감이었다.


T는 최초로 그 허들을 넘었고,

내 열등감은 그날 항구에 버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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