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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맹드 Nov 08. 2024

3. 진지하게 만나보자는 말

어리석은 결혼은 하기 싫었다.

35세 무렵 선봤던 숱한 남자들은 모두

'진지하게 만나보자'는 말로 교제를 시작했다.


T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번째 만난 어느 주말,

두껍고 커다란 솥뚜껑 같은 손을

내 손에 조심스레 포개더니,

우리 나이에 썸탈건 아닌 거 같고,
진지하게 만나봐요.


라고 던졌다. 조금은 긴장한 얼굴을 하면서.


'포동포동 잔망스러운 얼굴 안에

저런 엄숙한 표정도 감춰져 있었구나.'


시종일관 나를 향한 마음을 꾸준히 목격해 왔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사귄다는 것은

마냥 설레는 일만은 아니었다.


어떤 금(line)을 넘는 느낌.

우리의 관계가 단순한 호감을 넘어

다른 이들과는 획득하지 못한

특별함과 고유성을 얻을 수 있을지,

지금껏 한 번도 통과한 적 없던 허들을

다시 넘어보고자 출발선에 선 느낌.


내가 이 교제를 정말 원하지 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트랙에 어선 느낌.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무렴 어때.
(만나다 헤어지면)이 사람도
똥차인거지 뭐. 덩치 큰 똥차'


반복된 상처에도 나는 또다시

그 출발선에 선 셈이었다.


이 레이스 끝에 내가 웃게 될지,

울게 될지

수 없는 날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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