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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속 좁은 우리 신랑

어리석은 결혼은 하기 싫었다.

by 기맹드

신혼여행 가기 전에 엄니께 받았던 편지에서 내가 가장 감동받았던 문구는 "남자는 가끔 옹졸하다"는 것이었다. (6화 [그의 부모님] 사진 참고)


처음엔 왠 갑자기 '옹졸'일까 했다.

하지만, 1년 간 같이 살아본 결과 그 연유를 알 것 같다. 그 말은 마치 가위로 아무리 줄을 자르려 힘을 써도 날카로운 가윗날이 헛돌도록 구현된, 내 결혼 인생의 안전장치 같다.

속 좁은 신랑 때문에 내가 마음고생할 때마다, 엄니가 편지에 쓰신 그 문구가 나에게 참 힘이 되었다.

"수정아, 네 마음 다 안다."
하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우리 신랑은 싸움이 시작될라치면 혼자 토라진 채 작은방으로 휙 들어가는 유형이다.

언성을 높여 화를 내거나 나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그냥 문을 쾅 닫고 들어가 그 큰 몸을 작은방에 욱여넣어 침대에 발라당 누워버린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따라들어가 무슨 일인지 묻기도 하고, 기분 풀어주려고 농담도 해보고, 딱히 내 잘못이 없는 것 같아도 먼저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기도 해 보았다.

하지만 모두 무쓸모였다.


그에겐 그냥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쪼그라들어 옹졸해진 마음이 다시 정상적인 모습으로 부피를 갖추게 될 때까지 걸리는 그 회복의 시간 말이다. 소위 말하는 그 '동굴타임'이다.

Chat GPT에서 생성한 이미지. 기술 좋다.

그래서 이제는 그 문을 열지 않는다. 신랑에게 토킹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합죽이 기간은 최장 이틀로 정했다. 신랑도 성격 급한 내가 까무러치는 것을 보기는 싫었을 것이다.


나이들어 결혼하니 좋은 것은, '어느 정도' 내가 성숙해진 후라 상대를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20대 같으면 상대를 닦달했을 것이고, 30대면 이를 어쩌나 애달파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려니'하며 '저러다 또 말겠지' 혹은 '모든 건 다 지나간다'하며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에 집중한다. 조용해서인지 밤에 잠도 더 잘잔다.




느 토요일이었다. 술자리에 간 그가 약속한 귀가 시간을 이미 초과해, 나는 전화로 싫은 내색을 했고, 그는 나름의 어떤 서운함을 안은 채 내가 샤워하는 사이 집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렸고 그 후로는 인기척이 없었다. 샤워를 끝내고 거실로 가니, 그가 왔다는 흔적도 없이 분위기만 싸했다.


나는 TV를 켜기 전 적막 속에 그의 코 고는 소리를 감지했다.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가니, 그가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형광등을 켜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깊은 잠이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내가 우리 신랑 얼굴 생김새를 좀 좋아한다-해서, 양말을 벗기고 이불을 꺼내 덮어주었다.


드라마 속 여인네가 하는 행동들이나, 엄마가 언젠가 우리들 앞에서 했던 모습들을 내가 하고 있다 보면, '나도 이제 유부녀 다 됐네' 혹은 '나도 결국은 그 여자들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건가'하는 예감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미혼 인생을 부러워할 정도로
내 기혼 인생이 부정적으로 치닫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이혼 위기의 부부들을 앞세워 자극적인 소재로 예능을 하는 TV프로에는 흥미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들을 우리 커플과 비교하며 위안 얻고 싶지도 않다.

그들이 괜찮다고 해도 내가 안괜찮으면 그만, 그들이 괜찮지 않아도 나만 괜찮으면 그만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저
배우자에 대한 실망과 낙담 속에서도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내길 바란다.
그래서 결국은
마음의 평화가 깃들기를.


.


다음날 아침, 작은방 문을 조심히 여니 신랑이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살피며 그에게 조심히 안겼다. 그리고 편안하고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기분 좀 나아졌어요? 어떤 게 서운했어?"

"자기 주려고 빵도 사 왔는데, 버럭 화내니까 나도 싫지."

"미안해~ 앞으론 조심할게요"

"나도 늦어서 미안~"

그러고는 서로 간지럽히는 합법적인 괴롭힘을 주고받다가 웃으며 작은방에서 나왔다.


언젠가 무료 사주 어플로 봤던 내 운세 총운에서 50대인가 60대에 '병'이 찾아온다고 했었는데, 그게 우리 신랑 때문에 생기는 화병이 아니길 바라며...


신랑아.

우리 잘 지내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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