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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구차해도 성의 있게

어리석은 결혼은 하기 싫었다.

by 기맹드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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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산다는 것은 다른 한 세계에 진입하는 일이다.
마치 화성에 불시착한 지구인처럼.


혼자 살 때 가장 좋은 점타인의 간섭이 없는 완벽한 자유 것이다. 도 혼자 살 때 밥을 차리는 스타일과 속옷을 개는 방법으로 곤란에 처한 적은 없었다.


결혼한 지 2년째 되다 보니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맞춰졌지만, 그가 타협할 수 없는 한 부분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가 사수하고 싶은 영역은 바로 밥을 꼭 잘 차려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배고픔이 먼저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인스턴트 국에 밥을 말아먹거나, 냉장고 반찬에 대충 허겁지겁 먹는다. 그래도 건강은 챙겨야겠기에 계란 라이와 양배추는 꼭 준비한다.


근데 신랑은 허기짐은 참을 수 있지만 허접한 상차림은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허접함'이란 국도 없이 반찬만 몇 개 있는 상황이거 즉석이 차려지는 경우다.


한 번은, 함께 퇴근해 밥솥에 밥을 안치는 방법으로 조금의 설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고화력으로 맛있게 지은 밥을 먹길 원했고, 나는 밥이 덜 맛있더라도 빨리 먹는게 좋다. 쾌속 기능은 19분, 고화력 기능은 48분이 소요된다.

정답이 있진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이었다.

그는 배고파 사나워진 나를 위해 쾌속 버튼을 눌러주었지만, 이후 설명을 보태어 나에게 짠한 마음이 들게 했다.


"자기야, 우리가 같이 밥 먹는 때가 어쩌다 이 저녁에 한번 있는 건데, 설익은 밥보다는 그래도 맛있는 밥을 먹고 싶어. 그리고 나는 저녁을 대충 먹기 싫어."


그 이후로 우리는 번갈아 야근을 하는 바람에 다행히(?) 밥 짓는 방법으로 다툰 적은 없지만, 그의 설명 덕에 이제는 그의 취향을 존중해 줄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신랑은 싫은 내색을 티 나게 하거나 표정으로 들키는 사람은 아니라서 - 아주 고단수다 -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허접한 밥상이 서너 번 반복되자 밥을 먹다 말고 나에게 제안했다.

"주말에 같이 국을 한솥 끓여놓는 건 어때? 맛은 있는데 썩 만족스럽지가 않네."


그는 다행히 사실 판단, 감정 전달, 의견 제안 

이 3박자를 막힘없이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나도 국이나 찌개가 있다면 쉽고 빠르게 끼니를 때울 있으니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말에 금방 동의했다.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기분 나쁜 것은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감정과 의견을 잘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혼자 살면 내가 왜 속옷과 수건을 같이 세탁기에 돌리는지, 화장실 변기는 왜 이렇게 사용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같이 살면, 구차해 보이지만 친절하고 단정하게 잘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런 순간을 잘 넘기면 사이는 돈독해지지만, 그런 순간조차도 마주하기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한다면 결코 타인과 잘 살 수 없다.


그래서 두 명만 되어도 공동체의 삶이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성실성의를 보여야 한다.


나에겐 당연한 순간이지만 상대에게 성실하고 성의 있게 설명할 인내의 자세가 되어야 하며, 나에겐 지극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일지라도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인드로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기쁜 순간을 함께 누리고자 결혼을 했다면,
결혼생활이 생각보다 험난할 수 있다.
왜냐면 진정한 결혼의 의의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함께 헤쳐나가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챗 GPT야 고맙다


원체 잔소리 없으신 우리 엄마가 결혼 전에 신랑과 나를 데려다 놓고 조용히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안 돼.
깊어지기 전에 서로 얘기 나누고
잘 풀어야 한다."


엄마가 왜 그 말씀을 그토록 진지하게 하셨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님이었다가 남이 될 수 있는 순간은 결혼 생활에 여러 번 찾아온다.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해도, 보살이 아닌 이상

 자신보다 더 사랑할 리 없다.


내가 지켜내고 싶은 나 자신을 상대방이 먼저 존중해 준다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그 전에 내가 상대를 존중해야, 그도 나를 존중할 것은 자명하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과는 함부로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존중의 잣대는 너무 엄격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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