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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프레임에 갇힌 사람, 그리고 부정적 전염

피해자 마인드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까지 침식시킨다.

by 파사리즘

어느 한 멘토는 대학원 시절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기억 중 하나는 한 선배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본인의 과거를 꺼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가정사, 경제적 어려움, 연애 과정에서 겪었던 상처까지, 그의 삶은 불행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적인 연민이 들었고, ‘이 선배에게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피해자의 위치에 두려는 습관이었다는 것을요.


그는 늘 본인이 불행한 이유를 남 탓으로 돌렸습니다. 지도교수의 지적은 부당한 공격으로, 동료의 성과는 불공평한 결과로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순간에도 "환경이 나를 가로막았다"는 말로 합리화를 했습니다. 문제는 이 부정적 태도가 그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바이러스처럼 주고받는데, 그의 피해의식은 곧 제게도 옮겨왔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도 모르게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졌습니다. 교수의 말에 불만을 품고, 동료의 작은 성취에도 괜히 위축되는 순간들이 늘어갔습니다. 결국 저는 그의 부정적 에너지를 매일 받아내야 했고, 그것은 심리적인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정적인 영향력은 가장 빠르게 전염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피해자 프레임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는 끝내 지도교수와의 갈등을 풀지 못했고, 학위 과정조차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남들에게 상처받았다고 호소했지만, 실은 자기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놓아버린 것입니다.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영원히 피해자로 규정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요.


이 사례에서 ‘정서적 빌런’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늘 과거의 상처를 들춰내며 현재를 설명하고, 그 불행의 원인을 남에게 전가합니다. 동시에 부정적 감정을 주변 사람에게 퍼뜨려, 함께 있는 사람들마저 지치게 만듭니다. 이런 유형의 빌런은 조직 안에서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성과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욕과 에너지를 갉아먹는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리더든 동료든, 자신의 불행을 끊임없이 전가하는 사람은 결국 조직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리더십이란 성과를 내는 능력 이전에, 감정을 관리하고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는 책임을 포함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피해자 프레임에 갇히면, 그 영향은 한 개인을 넘어서 팀과 조직 전체로 번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더 지치게 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나 자신이 누군가의 부정적 전염에 감염되고 있지 않은가?” 완벽하지 못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피해자의 언어로만 말하는 순간, 우리는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반대로 그 불완전함을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으로 전환할 때, 진짜 성장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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