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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리즘 Nov 24. 2024

아버지와 나 (1992)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보내는 전상서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 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마왕 신해철이 남긴 <아버지와 나 part 2.>는 아무런 해설이 필요 없어도 좋은 그냥 그런 평범한 일상의 메시지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험해 본 일상의 모습, 자녀로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런 평범함 모습, 그냥 그런 흔한 인간의 인생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적 모습을 잊어버리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고요해지고 겸허해지며 가만히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단지 마왕 신해철의 중후한 내레이션 목소리가 좋았다.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로 전해오는 메시지 전달력이 좋았을 뿐. 하지만 20대에 청년기를 거치고 어느덧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과의 잦은 다툼이 시작되면서 나의 선택과 다른 아버지의 생각을 알게 되었고 더 먼 훗날에 한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며 아내와 아이들과의 의견이 차이로 인한 다툼의 골이 깊어질수록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가정 속에서 홀로 외톨이가 되어감을 느끼면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머금었던 적이 얼마였는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수해야 하는 삶을 살아 보냈던 것이 몇 해였는가? 그런 나에게 위로의 손길을 전해주는 마왕 신해철의 메시지는 평생을 함께해 온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마왕이 남긴 <아버지와 나 part 2.>는 연주곡으로 구성된 part 1. 과 함께 반드시 이어서 들어야 한다. 아버지로서 가지는 책임감과 자신감을 나타내는 part 1. 과 달리 part 2. 는 조용하고 무거운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마왕 신해철의 내레이션을 통해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는 메시지만으로 우리를 어린 추억 속의 모습 속으로 데려간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아버지는 가장 커다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무서울 때 가장 먼저 달려갔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내가 성장함을 느끼면서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와 같은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원하거나 원치않든 세상 속에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러하다. 대기업의 임원이라도, 작은 가게의 상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힘을 잃어가고, 마치 그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발악해 되지만 가족들에게서 소외받고 있음을 느끼고 세상에 홀로 내팽개쳐져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일을 술로 달래는 것도 아닐까.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나 역시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더 멋지게, 더 사랑스럽게 사랑가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이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 역시 아버지와 똑같은 것을 경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됨은 어렵지 않았다. 내 삶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아이들은 이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작은 장난감 하나를 구매하는 것도 함께 조잘조잘 이야기 나눴던 모습은 사라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함을 지르며 설득하고자 외친다. 그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아'라고 목소리 높여 고함친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나 역시 아버지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의 모습은 아버지가 아니었구나라며 말이다.



 나는 이 곡에서 전하는 마왕의 메시지에서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를 가장 좋아한다. 이것은 30년 동안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언제나 약속하는 것이다. 오늘만큼은 저녁에 아버지를 찾아가 볼까. 내일은 꼭 아버지를 찾아가 볼까라고 되돌림 표처럼 마음 한켠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실천 행동이면서도 먼 훗날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소망과도 같다. 성공하는 삶,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을 살아가도록 항상 소원해 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겠지만 나는 현실 속에서 만큼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중 나와주는 훌쩍 커버린 나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한걸음, 한걸음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추억과 인생에 대한 반성, 소박한 꿈을 꾸게 해 주는 마왕 신해철에게 감사를 전한다.







 파사리즘 : 성공과 행복의 메시지가 세상에 연결되는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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