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생활은 청춘 그 자체였어, 멀리서 보면

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02

by 노루

우리 과에는 과 동아리가 있었다. 소설 동아리, 시 동아리. 얼마나 낭만적인가! 대학생이 되어 소설과 시를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멋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내가 읽은 책이 얼마나 좋았는지, 어느 부분이 절망적이었고 어느 부분이 아늑했는지를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게 가능하다니. 얼른 소설 동아리 선배를 쭐래쭐래 따라가 동아리 부원이 되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싸늘하고 피비린내 나는 합평이 시작되었다. 소설을 써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런 자리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이상했다. 내 글을 좋다고 말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다른 동기의 작품이 욕을 먹고 있었는데 내 글은 인상적이고 담담하고 궁금하단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였다.


매번 얼떨떨한 기분으로 소설을 썼다.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자 한 학기에 한두 편의 단편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아니 이게 왜 되지? 매번 떨리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원고지 80매. 한글 파일로 8페이지에서 9페이지 정도면 그 분량이 되었다. 그래도 원고지 80매라는 그 낭만 넘치는 기준분량을 충족하고 싶어서 Ctrl Q I 버튼을 연신 눌렀다. 밤을 꼬박 새우고 해가 퍼렇게 밝아오는 아침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고 깜박이는 커서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아직 내가 쓰던 소설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찬겨울에 잠이 덜 깬 채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는 새벽의 느낌처럼 가슴이 시리고 몸이 떨렸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소설을 완성시켜 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때의 느낌은 오히려 점점 더 뚜렷해진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이런 기분도 미화의 일종일까.


나는 소설 쓰는 사람의 무언가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교수님도 선배들도 내 글을 좋아해 줘서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뭔가 소설에 넣을만한 장면을 찾게 될까 봐 길거리를 두세 시간씩 걸어 다녔다.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명동까지 일부러 나가야 볼 수 있는 독립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전시도 보고 만화도 보고, 그냥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세상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얻어서 나도 더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기들이, 선배들이, 후배들이,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내 글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지루해지고 식상해지지 않도록. 동아리가 끝나면 선배들과 때로는 교수님과 동기들과 학교 앞 공원에서 캔맥주를 들고 소설 얘기를 실컷 했다.


교내 문예현상에서 입상해 장학금을 타고, 성적도 잘 나와서 또 장학금을 타고. 학교를 거의 반값에 다녀서 그랬을까. 나는 내가 학교생활을 굉장히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성실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방학에도 동아리를 나와서 소설을 썼고, 글을 쓰는 수업은 성적이 좋게 나왔다. 문창과의 시험은 즉석에서 써내는 작품이나 과제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다른 과 친구들처럼 시험공부에 애쓰는 일도 없었다. 실습에 지쳐 울고 돌아오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보면 우리 과는 참 좋은 과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나한테는 글 쓰는 재능이 있어서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고생을 덜 하고 학교에 다니는 줄 알았다. 그 고생이 후불제인 줄은 그땐 정말 몰랐지.


그래도 나는 계속 열심히 살았다. 나는 나랑 잘 맞는 과에 들어와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무언갈 해야 했는데, 이건 성격 탓이기도 했다. 가만히 못 있고 자꾸 뭘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빠를 닮아서. 어릴 때부터 용돈을 받으면 다 써버리고 엄마한테 추가 용돈을 타내던 오빠와 달리, 한 달 삼만 원으로 친구들 만나고 영화 보고 맥도널드 사 먹고 문구점 쇼핑하고 책 사고도 저금할 돈을 남겨 통장에 넣던 내가 그대로 자라서 그랬다. 방학마다 알바를 했고 3학년에서 4학년 까지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알바를 하고 동아리 2개에 봉사활동까지 했다. 그래도 됐다. 이상하게 다 됐다. 성적도 떨어지지 않았고 내 소설은 여전히 학교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았고, 바쁘지만 오히려 더 알찬 삶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했다.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반 전철을 타고 동네로 와 지하철역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 먹으며 알바를 가서 열두 시에 퇴근을 했다. 용돈이 20만 원이었는데 한 시간 반씩 통학을 하며 학교 다니기에는 부족한 돈이라 알바를 했다. 근데 한 달 아르바이트비 40만 원 중에 35만 원을 적금에 넣었다. 차비가 6만 원, 동아리 회비가 4만 원, 15만 원으로 밥 먹고 술 먹고가 안되니까 혼자 먹는 점심은 생략하고 자판기 율무차로 견디는 날도 많았다. 티몬에서 만원도 안 하는 옷들을 사 입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엄마한테 말하면 용돈을 올려줬을 텐데. 적금을 하라고 시킨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는 집에 손 벌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통장 잔고 앞자리 바뀌는 게 참 재미있었다.


근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소설가가 될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갈수록 돈을 벌고 싶어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등단, 등단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교수님의 말씀. 그런 게 갑자기 장벽처럼 서더니 그 아름답던 소설의 모든 것들은 언제 해도 상관없는 게 되었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 알바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동아리도 하고 그러면서 성적도 괜찮았으니까 할 수 있겠지. 직장을 다니면서도 소설을 쓰고 등단도 하고 책도 낼 수 있겠지. 직장은 빨리 들어가서 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니까 하루빨리 들어가야 돼. 그렇게 나는 휴학 한번 안 하고 그렇게 좋아했던 학교생활을 4년 만에 깔끔하게 끝내버린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내 대학생활은 정말 행복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문창과에서의 시간은 사실 모순 덩어리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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