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03
그렇게 덜컥 졸업을 해버렸다. 일찍 취직을 해야 일찍 경력을 채워 몸값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부터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일단 이력서를 써 보았다. 이제 갓 졸업한 신세라 별로 쓸 말이 없지만 허전한 자기소개서 도입부에는 시도 한 구절 넣었다. 물방울 하나가 웅덩이 전체에 파장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구절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글을 쓰겠다는 자기소개서였다.
글을 쓴다는 직무면 가리지 않고 관심이 가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게임회사의 채용설명회에 찾아갔다. 제일 기대했던 게임 시나리오 담당자의 첫마디가 그거였다. '저희는 소설 쓰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나 글 잘 쓴다, 예술할 거다 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혼자 하시면 돼요.'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야. 이제까지의 나는 소설을 쓸 때 제일 반응이 좋았는데 여기선 소설 쓰는 사람은 필요 없단다. 심지어는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영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선물로 받은 게임회사 마스코트 모양의 쿠션을 안고 돌아오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취업시장에서 나, 환영받는 존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에서 가까운데 뭔가 글을 쓰는 직무를 하게 될 회사를 중점으로 원서를 넣었다. 별다른 대외활동 경력이 없었으니 경쟁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곳들에는 지원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엄마와 아웃렛에 가 정장 재킷과 치마를 샀다. 어디 좋다는 곳에 가서 5만 원짜리 취업사진도 찍었다. 나 같지는 않고, 나랑 좀 닮은 정도로 수정된 최종 사진을 엄마와 당시 남자친구에게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보통 새벽 네 시쯤 자고 열두 시쯤 일어났는데 매일 아침 두세 시간 동안 구직사이트 두 곳을 샅샅이 뒤졌다.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이렇게 있다가 일을 못하게 되면 어쩌지. 평생 엄마아빠한테 기대 사는 백수가 되면 어쩌지. 뉴스에서는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대해 매일 입을 모으던 시기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부터 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얼어붙었던 취업시장은 한 번도 녹은 적이 없다.
잠시 남자친구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나보다 네 살 연상으로 영어학원 스터디 모임에서 만났다. 나는 대학교 졸업토익을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학원이었다. 내가 알바를 하던 베이커리와 그가 얹혀사는 이모댁이 가깝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언제 한번 들르겠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날부터 매일매일을 얼마나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며 일했는지 모른다. 그때 그는 축구가 너무나 좋아서 대한민국 축구산업에 이바지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던 청년이었다. 우리는 자정쯤 전화통화를 시작해 새벽 네시가 넘도록 축구와 소설을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각자 집에 있던 반찬을 주섬주섬 모아 도시락을 싸 시립도서관을 다니며 놀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축구와 소설을 말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회사의 연락을 받고 직원 20명 규모의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정장 재킷과 흰 블라우스, 무릎까지 오는 정장치마와 3센티짜리 구두를 신은 채였다. 미리 적어둔 1분 자기소개 메모를 보며 대기했다. 면접관은 나에게 SNS를 즐겨하냐 물었고,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물었다. 정유정 작가의 28을 최근에 읽었던 나는 그 책의 제목을 말했고 간단한 줄거리를 묻기에 대답했다. 면접을 마치고 익숙지 않은 구두와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당한 나는 파김치처럼 풀이 죽어와서는 남자친구와 집 앞에서 돼지국밥을 한 그릇 먹고 긴 낮잠을 잤다.
며칠 뒤, 오전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받았더니 합격 소식이었다. 나는 가슴이 너무 벌렁거려서 어쩌지? 어쩌지? 이런 바보 같은 생각만 들었다. 엄마랑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돌려 합격 소식을 알렸다. 눈물도 찔끔 났다. 2015년 3월 25일. 졸업하고 한 달이 좀 넘은 취업이었다. 어쩌긴 뭘 어째. 이제 시작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