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 직장생활에 미친 영향

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04

by 노루

신입 환영 키워드를 달고 있던 그 회사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SNS 운영을 대행해 주는 광고대행사였는데, 사회 초년생들이 바글거리는 대학교 같은 분위기의 기업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거기서 그렇게 칼정장을 입고 면접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단다. 나는 거기서 블로그의 줄글이나 카드뉴스 콘텐츠의 원고를 쓰는 직무에 배치되었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채 사회에 내몰린 나는 한 2개월 된 새끼강아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누가 부르기만 해도 화들짝 놀랐다. 출근해서는 퇴근 때까지 휴대폰을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고(이건 아르바이트할 때 새겨진 습관이었다) 혹시나 책잡힐까 봐 PC 카톡도 깔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지인들은 내가 출근하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나와 완전히 연락두절 되는 셈이었다. 고맙게도 다른 분들은 내 그 어색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귀엽게 봐주셨다. 일과시간 내내 몸이 너무 긴장을 해서 처음 한 달 정도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저녁잠을 자고, 일어나서 겨우 저녁밥을 먹고 다시 밤잠을 잤다.


대행사라는 특성상 팀마다 가지고 있는 거래처가 달랐고, 나는 한 자산운용사의 SNS 홍보용 텍스트 콘텐츠 작성과 채널 운영을 맡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산운용사가 뭔지도 몰랐다. 그저 예금 적금 중독자일 뿐이었던 내가 자산운용이라니, 무엇보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은 게 제일 큰 문제였다. 단어 뜻이야 검색을 하면 나온다만, 그 나온 단어의 뜻도 추상적으로만 이해가 될 뿐 내가 직접 그 단어를 넣어 문장을 만들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네이버 메인의 경제 탭을 주야장천 드나들었다. 출근길에는 팟캐스트로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들었다. 정말 경제가 손에 잡힐 듯 말 듯했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들어오면 양치를 해도 시간이 좀 남았다. 팀원들이 다 남자분들이었어서 먹는 속도가 빨랐다. 사무실에 올라오면 잠깐씩 책을 읽기도 했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도서관을 끼고 살았던 나에게는 이동시간이나 남는 시간에 읽던 책 마저 읽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끔 책 읽고 있는 나를 본 동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책을 읽어요? 그 당혹감이 너무 느껴져서 곧 책 읽는 일은 그만두었다. 유별난 일처럼 느껴져서였다.


누가 전공을 물으면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그래서였던 것 같다. 문예창작학과라고 대답하면 보통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연설명을 해야 했는데 항상 조금 머쓱한 얼굴로 설명을 했다. 글 쓰는 과예요.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평론 같은 것도 쓰고요. 그러면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구나. 글 잘 쓰겠네요. 책 많이 읽겠네요.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창과 하면 많이들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특징이 있었다. 국문과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긴 했는데 좀 자세히 그려보면 다르다. 국문과가 차분하고 부드러운 국어선생님 스타일의 책쟁이라면 문창과는 어딘지 모르게 퀭한 더벅머리의, 어두운 골방에 혼자 틀어박혀 스탠드만 켜놓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책쟁이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업무에 전공이 많이 도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게 익숙하니까 글을 구성하고 문장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그런 일들을 잘 해보지 않은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편했겠지만 전문성이 필요한 정도의 작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전공이 업무에 도움이 되기를 원했는데, 그러려면 아마 다른 전공을 선택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생각해 보자면, 시나 소설을 쓰던 작업은 제목을 뽑아낼 때 도움이 되었다. 근데 이건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나 스스로의 만족감에 도움이 되었다는 거다. 누군가 말했듯이 소설을 쓰려면 집에 가서 쓰면 되는 거였다. 회사는 소설 쓰는 곳이 아니니까. 그 말이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너무 납득이 가서 신기했다. 연말에 한 해의 업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만들었던 콘텐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뭐였는지 팀장님이 물었다. 시구처럼 꾸몄던 콘텐츠의 제목이 있어 그렇게 대답했다. 검색 최적화나 상위 노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한번 끄는 효과는 아주 조금은 있지 않을까.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문창과 졸업생으로서 그렇게 시도해 봤던 결과물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문학적인 표현에 공감하고 쉬어가는 여유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별 이상한 오지랖도 있다.


오히려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던 건 평론 쪽이었다. 평론 수업을 시나 소설 수업보다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평론 수업을 들으면서 작가의 여러 작품을 테마에 맞춰 선별하고, 그중에서도 내가 쓰고 싶은 주제로 엮어 글을 구성하고 필요한 부분을 차용하는 점이 그랬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정보를 큐레이팅하고 그것을 활용해 글을 구성하고 이미지를 꾸리는 부분은, 전체적인 구성을 해내는 과정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짜임새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다. 같은 주제로 다른 동료와 콘텐츠를 만들 일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실제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동료나 상사들이 나를 '창의적인 사람'으로 기대해 준다는 것도 어쩌면 장점일 수 있겠다. 단,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우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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