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미덕은 어디서 오는 건 가요
4살 아들의 마음 일기 [절제하다]
절제하다: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거나 제어하다.
갖고 싶지만 참는 마음
폭염이 이어지는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었더니 2시, 가장 더울 시간이라 갈 곳을 못 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집에 들어갈 순 없었다.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집에서 노는 것보다 오히려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다. 집에 있으면 이리저리 방방 뛰는 아들도, 뛰지 말라고 말하는 나도 스트레스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시간도 더디게 가는지. 어쨌든 아들도 집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어떻게든 집 밖에서 시간을 때우고 들어가야 한다.
덕진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둘째 분유만 먹이고 이동했다 어디로 가지? 나중에 덕진 공원에서 오리배 타자는 아들과 한 약속이 떠올랐다. 차를 돌려 덕진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 살갗에 내리쬐는 쨍쨍한 햇볕에 뜨겁고 숨이 턱턱 막혔다. 잠시 피한 그늘도 소용없었다. 정말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왔으니 오리배 매표소로 갔다. 하지만 매표원의 말을 듣고 이내 발길을 돌렸다. 구명조끼를 입고 둘째를 안아야 한단다.(안전 상의 당연한 말이었다) 아내와 나는 매표원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아이를 안고 있기에는 너무 더운 날씨였다. 유호야 오늘은 너무 더워서 탈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말을 하고는. 결국 도착하자마자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무더운 여름에는 역시 에어컨 바람이 최고다. 홈플러스에 가려는 찰나에 마침 집 근처에 노브랜드 매장이 오픈했다는 것을 알았다. 겸사겸사 구경도 할 겸 이동했다. 마트는 피서지로 으뜸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더위에 지친 우리를 반겼다. 매장 안에는 온갖 상품들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 돌릴 틈이 없이 매장 안을 둘러봤다. 먹는 것부터 생활용품까지 없는 게 없었다. 노브랜드 상품을 한데 모아두니 물건을 사는 데도 편했다. 그것이 함정이었다. 사는 것이 편하니 마구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초콜릿, 오란다, 나쵸, 평소에 먹지도 않는 와인(노브랜드 와인)도 눈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계획에도 없었던 장보기가 시작됐다.
아들이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걱정거리가 늘었다.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가는 일이 두려웠다.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행여 아들이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이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보이는 대로 사달라고,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랄까. 종종 마트에서 어떻게든 사려는 아이와 안 된다는 부모의 사이에 벌어지는 힘겨루기를 목격할 때가 있다. 마트에 드러누워서 억지 부리며 울고불고 난리 피우는 아이와 윽박지르거나, 회유하거나, 무시하거나, 차근차근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기다려주거나, 빠르게 다른 화제로 넘기거나, 결국 아이의 생떼에 못 이겨 아이의 뜻을 들어주는, 그 순간 부모는 온갖 기술들을 써가며 진땀 뺀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다.
아들은 오히려 나보다 절제를 잘하는 것 같다. 한참 장을 보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나오는 나의 뒤통수에다 한마디 던진다. "아빠 돈을 아껴야지!" 아들의 말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네 살 된 아이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에 더 당황스러웠다. 아들에게 아껴야 한다고 다그치면서 교육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많이 사지도 않아서 더 억울했다. 한마디로 아들의 말에 기가 찼다.
집에 있는데 똑같은걸 사면 낭비야!
아들은 홈플러스 아이쇼핑을 즐길 줄 안다. 어려서부터 갈 곳이 없으면 홈플러스에 갔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아들이 들르는 곳은 정해져 있다. 가장 먼저 가는 곳은 화장품 매장, 립밤을 보면서 "이거 엄마 사줘야겠다"라며 만지작 거리는 아들, 그다음은 가전제품 코너를 지나 애완동물을 파는 곳으로 향한다. 토끼, 거북이, 햄스터, 앵무새를 한참 동안 보고 책 코너로 가서 뽀로로, 공룡, 중장비 캐릭터가 그려진 퍼즐과 책들을 본다. 아들의 맨 마지막 코스는 장난감 코너다. 아마도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 같다. 장난감 코너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길다. 중장비, 레미콘, 포클레인, 트럭을 만져보고 들어 보는 모습이 귀엽다. 헬로카봇, 띠띠뽀 캐릭터 이름을 어찌나 잘 아는지 신난 표정으로 "이건 티라쿵이야" "저건 모스쿵이고!" 라며 나에게 알려준다.
아들은 사고 싶어도 사달라고 조르진 않는다. "아빠 이거 살래"라고 말은 하지만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없다고 설명해준다. 부모 마음 같아서는 아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지만 원한다고 다 들어주다 보면 아들의 미래가 뻔하다.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이 없거나 감사를 모르는 아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분노하는 아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쓰는 아이로 키우고 싶진 않았다. 아들이 심하게 떼쓰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1. 그림책으로 시뮬레이션하기
마트에서 어떤 여자 아이가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 그림이었다. 엄마는 안된다며 말풍선에 집에 똑같은 게 있는데 사면 낭비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이 그림책을 의도적으로 읽어주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집에 있는 것이나 비슷한 것을 사는 것은 낭비야 마트에서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거야 라고 알려주었다. 세 살 때만 하더라도 아들은 마트에서 사고 싶은 것을 발견하면 우리 눈치를 보며 그 자리를 맴돌았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자기표현하면서 사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또 다른 차원의 설명을 덧붙였다. "장난감들도 마트에 가족이 있어 여기에 있어야 해!" 말만 들으면 아이에게 너무 하다 싶지만 아들은 잘 받아들였다. 아들 눈높이 맞는 설명이었다. 그 후로 마트에서 실컷 놀며 아이쇼핑을 즐길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2. 두렵다고 피하지 마라
아들과 마트에 가면 마음 한편으로는 떼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긴장됐다. 아들이 드러눕고 떼를 쓴다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애초부터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지만 피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매번 아이를 두고 마트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극이 되는 환경을 제거하기보다 자극되는 환경을 경험하고 실수와 성공을 반복하는 일이 중요했다.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했다. 세네 살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을 위해 떼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가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 부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3. 그래도 결국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생떼를 쓴다면...
이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생떼를 쓸 때 한 두 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일은 더 커지고 아이의 부정적인 행동을 조정하기 더 힘들어진다. 휘말리는 순간 아이의 행동은 강화된다. 그 후로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기면 그것을 얻기 위해 생떼 쓰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무조건 아이가 원하는 대로, 아이의 생떼에 못 이겨 들어준다면 더 심한 반항과 생떼를 부모가 가르치는 꼴이다. 주변의 따갑고 불편한 시선을 무시하고 아이를 올바른 행동을 양육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울고불고 소리 지를 때 대화를 이어갈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설명해주고 아이가 올라온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소리 지르거나 떼를 쓰더라도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첫 단계를 성공한 것이다.
그다음에는 왜 사줄 수 없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줘야 한다.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반복해서 알려줘야 한다. "지금 가져온 돈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아!"라고 설명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골라볼래?"라고 많은 것 중에 아이가 선택하게 해, 만족감을 느끼게 해 준다면 선택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 당장이라도 버럭 화를 내고 윽박지르거나 완력으로 손을 잡아당겨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폭발하는 순간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상처만 입게 된다. 아이는 자신을 혼내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더 심한 반항을 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참지 못하고 폭발한 자신을 한탄하며 죄책감과 무기력을 경험한다. 돌이켜보면 앵무새가 되어 반복해서 설명하는 귀찮음이 차라리 낫다.
아들과 마트 가는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억지 부릴 때는 있지만 안 되는 이유를 받아들이는 아들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안도한다. 한편으로는 풍족하게 사주지 못하는 상황에 아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다. 왜 다 사주고 싶지 않겠는가, 자식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데. 아이가 절제하는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중용을 알고 나름의 기준을 분명히 세워야 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