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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인경 Aug 12. 2024

다림질 II

숙취 가득한 방 널브러져 있다

반듯이 뉘인 날 촉촉한 입김이 지나간 자리
다시 솜털이 서면
퇴폐적 밤이 남은 몸 여전히 구겨지고 싶은 건가
날 발기하게 하는 이유를 물으려는데
욕망을 짓누르는 현실이 도착했다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해 화가 난다

구겨진 옷 모두 벗어버린 채 날카롭게 선 나무들

잔뜩 화 난 채 맞은 아침
그래 삶을 맞서려면 날카롭게 나서야지
갑옷이 아닌 칼을 입어야지
바람도 잘려 나가게
사람도 비켜 나가게

계절의 담금질은 칼이 되었다

무서운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던 자동차들
신호등 앞에 멈췄다
유유히 횡단보도를 지나는 나의 붉은 눈
으르렁대며 떨고 있는 사각의 얼굴들
살기가 감기면 달려들겠지

가로수 앞에 서서 마주한 칼끝

거울 앞에서 마주한 누군가
칼 끝을 들이댄 눈빛이 낯익은
오래된 녹슨 칼날이 애처롭다
아니 칼을 든 힘겨운 손이
모든 것이 무뎌지는 하루의 끝에 멈추었다
베지 못하면 상처는 나의 몫
더이상 시간을 파고들지 못하면
칼집을 찾아가야지

낙엽 그 처량한 비행처럼

입구를 헤매는 칼끝
바람에도 흔들리는 빈 나뭇가지 끝
고개만 들다 사정하지 못한 하루가
사정없이 구겨졌다

짓이겨진 녹슨 식당 셔터문 앞 밟힌 잎사귀들


[작품출처 - 구겐하임 미술관, by Pablo Picasso, woman ironing,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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