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물작가 윤 Oct 22. 2024

무엇인가? 무엇인가.

선물작가의 서른여섯 번째 편지

나무님이 보낸 편지를 열어만 보고 다시 접어서 고이 넣어두었었어요. 팔월은 제게 뜨거운 햇볕 아래 사막을 맨발로 뛰어가는 기분이 드는 달이었어요. 올 여름 폭염이 모두를 힘들게 했지요. 내가 더 힘들었어요, 라거나 내가 제일 힘들었어요, 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죠. 아무리 온전히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 내어주고 싶어도 제가 온전치 못하면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저를 진짜 반가운 선물로 기억해준 나무님 덕에 힘이 난 첫 문단을 읽고 나서, 차분히 앉아 편지 한 장을 읽을 시간이 없었어요. 물론 거짓말이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멍하니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기도 했죠. 시간이라는 건 참 오묘해서, 살아갈수록 시간은 있는 게 아니라 ‘내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기세 무서워 선풍기로 한낮을 보내면서 가을 바람이 부는 구월이 되어서야 오랜만에 제 방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제 방은 햇빛을 엄청 듬뿍 받는 방이라 밤이 되어도 열기가 가시지 않았거든요. 급한 작업은 노트북으로 하고, 제 방엔 최대한 들어오질 않았어요. 그래도 데스크탑에 자료가 다 있으니 들락거리긴 했지만, 숨이 막혀 일을 못하겠더라고요.

청소를 안 하니 먼지는 쌓여가고, 어지러운 방은 유리창 이론을 증명하듯 잠깐만 사용해도 지저분해지고, 제 마음도 그랬어요. 그러던 중에 나무님이 영월에 왔단 소식에 휴가가 별 건 가요? 에어컨 튼 차를 타고 달려갔죠. 좀 더 긴 시간을 함께 하면 좋았을 텐데,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만큼 정신이 없었어요. 아주 큰 단체에서 총괄하시는 분이 저랑 저녁 한 끼 드시고 싶다고 일정표를 꺼내시면서 저에게도 일정을 보라고 하시길래 휴대폰 달력을 열었어요. 그랬더니 ‘작가님, 글은 언제 써요? 일정이 이렇게 빡빡해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기록하지 않은 일정도 많은데 말이죠.


사람들은 틈틈이 글을 쓰라고 해요. 기획서나 에세이는 틈틈이가 그래도 가능한데,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극작은 그게 안 되더라고요. 현실적인 소재, 캐릭터, 플롯 구축을 위해선 혼자 상상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구성도 머릿속으로, 종이에 끄적이다가 구체화 시키고, 자료 조사도 하고, 시작하는 힘을 끝까지 밀고 나가 완성시켜야 하는데, 정말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시작만 한 쓸모없어진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쌓였는지 몰라요. 아이디어가 불꽃이 되어 분명히 사나흘이면 단편이, 이 주면 극작이, 한 달이면 장편이 나올 법한 뮤즈가 왔는데도 그냥 떠나보내야 할 때의 무기력함과 슬픔. 그게 제겐 가장 뜨거운 사막이었어요.


누군가는 ‘다 놓고 글부터 썼어야죠, 작가인데!’ 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옆에서 제가 하는 일을 가까이 보는 극단 식구들도 그렇게 얘기하는 걸요. 관광, 휴가, 축제, 행사가 많은 여름 성수기에 극단이 할 일이 많았다는 건 어찌 보면 참 기쁜 일이고, 개인적으로는 까맣게 살도 마음도 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이에 공연도 점점 관객들에게 입소문이 날 만큼이 되고, 제 마음도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아요. 나무님을 보고 와서 저 역시 영월에서 얼굴 보아 참 좋다. 시간 내어 달려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만 들더라고요. 나는 왜 휴가 못 갔지, 왜 나는 아직도 가족을 못 꾸렸지, 나는 왜 휴식이 없을까, 같은 생각은 전혀 안 들고, 그냥 좋았어요. 뭐라도 주고픈데 너무 빈손으로 마음으로만 급히 달려가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만나서 참 좋았어요. 덩실덩실.


게다가 어슐러 르 귄이라니오!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제가 처음으로 판타지가 왜 장르문학으로 분류되어야만 하는가를 의심하기 시작한, 그리고 제가 가졌던 ‘순수문학’에 대한 생각을 깨트린 작품이 바로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입니다. 처음으로 제가 필사한 작품이기도 하죠. ‘어스시의 마법사’는 아직 못 읽었는데, 나무님 덕에 새로운 책을 읽을 기대로 설렙니다.


요즘 극작하고, 극단 대표를 하면서 종종 생각합니다. 극의 완성은 관객인데, 관객을 고려하지 않은 연기, 극작, 연출을 종종 봅니다. 저 역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늘 두렵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에만 빠지거나 순수 예술을 해 보겠다는 자만에 빠져 관객과의 소통을 놓칠까봐요. 옛날엔 문화 향유를 특정 상류층마나 했지만, 이젠 대중이 문화 향유를 하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대중’을 외면하고 뭔가 멋진 작품을 해보겠다는 제 개인의 욕구에만 충실하다면, 그건 예술가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책은 팔면 독자의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은 이상 알기 어려운데 반해 극은 이미 진행하는 도중에 관객과 소통하는 건지, 작품이 관객에게 닿았는지 느껴집니다. 예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러니까 그림을, 소설을, 시를, 무용을 향유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인정받는 예술가가 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지 오웰이 작가의 첫 번째 욕구가 인정받고픈 거라는데 공감하거든요. 그러면서 다시 어슐러 르 귄의 작품을 읽고 싶다, 고 생각하던 중에 세상에! 그녀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추천하다니. 다시 덩실덩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사실 처음 들어보는 시였는데, 나무님 덕에 한 번뿐인 인생 주인공으로 살아야지, 라는 세상 속에서 풍경으로 스며들어 자연과, 사람들과, 세상과 조화로운 사람이 떠올라 편안해지네요. 저는 전에 말했듯 특별히 정호승 시인의 시들을 참 좋아하는데, 그 중에 꼽으라면 너무 많지만, 되려 하나를 꼽으라면 정희성의 ‘민지의 꽃’입니다. 전에 경북대학교 논술을 가르치다 기출문제인 이 시를 읽고 이번 여름처럼 별사람과 다 부딪치고, 억울하고, 힘들 때마다 시 속 민지가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는 ‘꽃이야’란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꽃을 떠올리고 현실의 상황, 대상을 다시 봅니다. 정말 시인들이 낚는 언어는 어찌나 결이 고운지, 심지어 송경동 시인처럼 노동 현장의 강렬한 시조차 고운 결의 언어로 승화시켜 가슴을 아리고 울렁이게 만들다, 결국엔 몸을 일어서게 합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이 새벽에 글을 쓰고 있겠지요. 하지만 목적을 갖고 쓴 글이 예술이 될 순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결국 글을 쓰는, 이야기하고 듣는 사람 자체가 예술적 그릇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사도 사람이 도구고, 내담자가 상담사를 통해 자신을 보고, 찾고, 일어서기 때문에 늘 상담사 자신을 좋은 도구로 갈고 닦아야하죠. 우스개 소리이자 슬픈 얘기지만, 그래서 상담비를 아무리 비싸게 받아도 상담사가 자신을 가꾸기 위해 쏟아붓는 돈에 비하면 적은 거고요. 작가도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연기자들도 많이 보니 마찬가지고요. 자신을 예술가로 갈고닦지 않으면, 작품이, 연기가 예술이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지 못했고, 가지 않았던 수도자의 길과 비슷한 결이 있네요.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것. 어쩌면 나무님과 제가 여러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지만, 이것도 우리를 강렬하게 연결시키지 않나 싶어요. 세상 속에 살지만, 나이 먹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갈고닦는 걸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요.


상담사 자격증을 땄다고 상담사로 완성된 게 아니고, 등단이나 책을 냈다고 작가로 완성된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끝까지 예술가로, 상담사로, 혹은 그 무엇인가로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서로를 격려하고 알아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저를 예술가라는 그릇으로 좀 다듬고 싶네요. 계속 물레에 흙을 얹어 모양을 만들었다 부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요. 가을의 입구에서 일하려고 켜 놓은 컴퓨터 창을 내려놓고, 나무님께 먼저 편지를 씁니다. 일 잘하는 극단 대표 말고, 오늘 밤은 예술가로 그릇을 굳히고 싶네요.

에드워드 호퍼의 <푸른 저녁>이 떠오릅니다. 하얀 삐에로가 되어 카페에 앉아 무엇부터 해서 무엇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새벽이 되렵니다.


굿나잇, 그리고 굿모닝.

아마 이제 일어날 나무님은 어떤 새벽을 맞이하고 있을까요?     


24.09.03.0526. 영월에서 선물작가 드림.

이전 15화 기억하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