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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May 02. 2023

떠나요 괌으로!

오래된 버킷리스트 지우기

대한민국에서도 이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거리 두기를 하고 마스크로 인해 공기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고 여행도 마음껏 떠나지 못했던 지난날. 이제는 곳곳에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소식을 접한다. 가까운 사람들도 하나 둘 다녀오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도 자꾸만 비행기 타듯 붕붕 떠올랐다.


갈지 말지 확신은 없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라 괜스레 초록창에 항공권을 검색하면서 기웃거려 본다. 베트남을 갈까 태국을 갈까 싱가포르를 갈까 어디로 갈까 어디든 갈 수 있는 조건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 인천이나 서울이었다. 대구에서 기차 타고 올라가서 또 비행기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엉덩이가 아파왔다. 대구에서 출발하는 국제선은 선택지가 매우 드물었고, 그나마 가까운 부산은 좀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알아봤더니 웬걸! 괌이 있는 것이 아닌가!


괌은 4시간 15분 정도 소요되는 비행시간에 렌터카로 이동하기도 편리한 곳이라고 한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가족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작은 하와이 같은 곳, 괌!

비록 환율이 1,330원을 향해 치솟고 있는 달러강세의 시기지만 더 이상 돈을 신경 쓰느라 소중한 경험을 미루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여행만큼 즉흥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출국일까지 2주 전, 나는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주 어린 시절, 그녀는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떻게 해서든 딸을 걷게 하겠다는 집념 하나로 그녀를 업고 전국의 큰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다닌 그녀의 부모님 덕분에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는 비록 절뚝거리지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장애인은 집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했던 그 당시 분위기에 따라 그녀는 동네마실조차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고 늘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두고 바깥외출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걸을 수 있다 한들 본디 약한 다리로 오래 서 있는 것은 힘들었던지라,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아서 서서 가야 하는 버스를 타야 할 때면 언제나 버스 안에 사람이 듬성듬성 빌 때까지 정류장에 앉아서 하염없이 버스를 보내고 또 보내곤 했던 그녀.


두 발로 마음껏 뛸 수 없었고, 걸을 순 있지만 외출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나갈 기회가 자주 생겼다.

지금도 그녀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얼마나 멀든 나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기분이 하루종일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듯 설레게 한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더 늙기 전에 가야 한다.'

분명 나의 어린 시절 그녀는 비록 절뚝거리지만 두 발로 잘 걷고 느리지만 산도 곧 잘 타고는 했다. 하지만 세월은 그녀의 눈가에 주름을 남기고 다리의 힘을 가져갔다. 이제 보조기, 목발, 전동스쿠터 등에 의지해야 걸을 수 있는 그녀를 보면서 어디든 갈 곳이 있다면 갈 수 있을 때 가야 하노라 외치는 그녀의 말이 새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낀다. 정말 그녀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함께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늘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그녀와의 여행을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지만 물놀이는 무척 좋아하는 그녀는 수영장을 가본 적이 없다.

시원하게 팔과 다리를 드러내는 수영복은 그녀를 걷게 하기 위해 스친 자국들을 선명하게 잘 보이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이었다.


물놀이를 가더라도 일상복을 입고 들어갈 수 있는 바다나 계곡을 가곤 했던 그녀, 수영장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TV화면에서 사람들이 튜브에 의지한 채 두둥실 떠다니는 유수풀과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미끄럼틀이 있는 워터파크를 딴 세상 이야기처럼 바라보는 그녀를 보고, 워터파크에 다양한 나이대의 가족과 함께 온 이들을 마주하면서 그녀와 함께 수영장에 가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그들의 수영복 차림과 워터파크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워터레깅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티셔츠같이 생겼지만 래시가드이기도 한 제품들도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더 이상 수영복이란 늘씬한 사람들만 입는 것이 아님을, 몸매에 구애받지 않고 수영복을 입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을 인지했다. 아무리 체격이 건장한 사람이라 한들 수영복을 입고 자유롭게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집에 있는 겉모습은 아줌마지만 속은 여린 소녀 같은 그녀를 떠올렸다.


이번 여행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엄마! 다이어리 위에 쓰인 그 버킷리스트, 이제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가자! 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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