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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May 17. 2023

손으로 쓰는 글_바람

하루 20분 손글쓰기

집단 상담에서는 본래 이름 대신 별칭, 닉네임을 사용한다. 마음이 한창 춥고 외로웠던 시절에는 ‘봄날’이라 지었고, 하고 싶은 말을 못 해 가슴이 답답했던 시절에는 ‘사이다’로 불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참여했던 집단에서는 ‘바람’이 되었다. 바람, wind, wish. 그 어느 쪽 모두 마음에 든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지금, 모처럼 책상 앞에 앉아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초여름 바람을 맞으며 글을 쓰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평화롭고 충만하다. 혹여 애가 깰까 조바심 나는 마음에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호사다. 손글쓰기의 매력은 생각나는 데로, 되도록 필터를 최소화하면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반쯤은 억지로 내려놓게 만든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은데, 무엇 하나 집중해서 진득하게 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다만 요 근래 들어 자꾸만 손으로 쓰는 글을 적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자꾸 채근하는 느낌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나는 모르나, 손으로 글을 써나가다 보면(꾸준히 한다면) 언젠가 그 형체를 마주하게 되리라 기대하고 바란다. <몸은 기억한다>는 책 제목처럼, 내 몸과 감각, 손끝을 통해 쏟아져 나올 마음 속 진실을 나는 믿고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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