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인 May 09. 2023

손으로 쓰는 글_기대

하루 20분 손글쓰기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는 실어증에 걸린 외롭고 슬픈 눈을 한 청년이 등장한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쌍둥이 이모들과 함께 살며 그녀들의 댄스 강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치면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기대 없는 하루를 살아간다. 각박한 그의 삶에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마주하게 된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마담 프루스트가 만들어준 비밀의 차를 마시면 잊혀졌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폴은 생애 초기 갓난아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요람 위에 누워있는 아기 폴에게 가족, 친지들이 다가가 각자 자신들의 기대와 소망을 노래하는 모습이다. 쌍둥이 이모들은 아기 폴에게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고 하고, 아빠와 그의 친구는 아코디언 연주자가 어울리겠다고 한다. 단 한 사람, 엄마만, 그 어느 쪽도 원하지 않는다며 폴은 자기 뜻대로 살 거라고 말한다. 멋진 가족이라면 아이 인생을 함부로 결정하지 않을 거라는 일침을 날리며.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원하는 소망, 판타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그려놓은 장면이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아기가 태어나면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 한꺼번에 쏟아지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기대 또한 존재한다. 아기는 성장해 가면서 관심과 사랑, 기대, 인정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실타래를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어쩌면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처럼, 자신의 진정한 바람과 타인이 자기에게 기대하는 바람을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타인의 기대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편하고 순행 방향인듯 보이지만, 사실 자기로서 사는 삶과는 반대 방향이다. 반면 자신의 기대로 사는 삶은 거스르는 역행의 삶을 각오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거슬러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하지만 자기의 소망과 바람을 알고 사는 삶은 고될지라도 영혼이 자유롭다.


나는 우리 집 작은 인간이 자신의 기대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 또한 여전히 그 과업을 끊임없이 해결해 나가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이전 01화 손으로 쓰는 글_바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