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를 등지고 갈 너를 떠올리며
지금 시간은 저녁 9시 3분.
겨우 아기를 재우고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써본다.
이제 28개월 된 나의 사랑스러운 아기는 졸릴 때가 되면 엉금엉금 내 가슴팍 위로 올라와 눕는다. 어릴 때부터 안아서 재우던 버릇이 남아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어야 잠이 잘 오나 보다. 이제 13킬로가 되어 너끈해 숨쉬기가 버겁긴 하지만 이것은 내가 바라던 미래다. 우리 아기를 손타는 아기로 키우는 것.
손타면 큰일 난다고 말하는 시대에 손타는 아이로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고지식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것도 맞긴 하지만 나는 그저 안아달라면 안아주고, 토닥여달라면 토닥여주고 싶을 뿐이다. 별다른 이유나 사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해줄 수 있는, 필요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고 싶다. 그래서 머나먼 미래에 결핍이 생긴다 해도 그것이 나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닌 자아실현적인 결핍이었으면 한다. 이 작은 것이 날 원망할 걸 생각하면 진부한 표현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테니까.
어차피 엄마가 전부인 세상은 몇 년이 지나면 끝이 날 테다. 슬퍼할 일이 아닌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지만 아쉬운 건 숨길 수 없기에 지금이라도 마음껏 누리고 품는다. 네가 나를 가장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가장 사랑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작가 최은영의 단편소설 [한지와 영주]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애들과 헤어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고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았지. 이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왔어.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말했지. 그건 우리 생각일 뿐이라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걔네의 행복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거야. 사랑과 애착을 구별해야 한다면서, 나를 위해서 야생동물들을 곁에 두려는 생각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했어. 헤어지던 날 걔들을 케이지에 태우고 운전을 해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풀어놓았어. 돌아서려는데, 내 쪽을 자꾸만 보더라. 보지 말고 앞으로 가라고 말했어. 그런데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거야. 그애들, 뒤를 돌아보면서도 앞으로 가더라. 천천히 우리를 등지고 그렇게 초원 속으로 가더라."
아픈 코뿔소를 치료해 주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인물의 말이었지만, 어쩐지 코뿔소가 우리 아기 같아서 한참 동안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나의 아이도 언젠가 뒤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겠지. 10번 돌아보다가 5번 돌아보다가 1번 돌아보다가 그렇게 점점 멀리 가버리겠지. 그렇다면 나는 더욱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줄 것이다. 아이가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 힘들고 아프면 와. 다시 왔다가 다시 가더라도 꼭 와줘. 그날을 상상하며 제 옆으로 오라는 아기를 꼭 끌어안는다.
짝사랑은 결코 싫다고 말했던 젊은 날의 나에게, 짝사랑도 해보니 좋다고. 어쩌면 이게 더 깊은 사랑 같다고 으스대며 말하고 싶다. 넌 몰라. 얘가 얼마나 예쁜지. 나를 등지는 뒷모습조차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