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회전문가 Sep 04. 2024

맘충에서 벗어나기

오늘 아기를 데리고 외식을 했다.

식당에 가기 전, 미리 노키즈존이 아닌지 검색해 보고 아기의자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아기가 울 것을 대비해 아기가 좋아하는 간식과 장난감을 챙기고 결연한 마음으로 식당에 갔다. 


메뉴를 주문한 뒤 아기의 손에 간식을 들려주고 허겁지겁 밥을 마셨다. 먹었다가 아니라 마셨다는 표현이 맞다. 아기가 울기 전에 다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은 아기에게 고정하고, 손은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나르고, 입은 씹기가 무섭게 삼켜 넘긴다. 음식을 다 먹은 후 물티슈를 들고 아기가 앉은자리 주변을 닦는다. 사용한 아기의자, 테이블, 바닥까지 싹싹 닦는다. 내가 흘리지 않은 게 분명한 이물질이라도 일단 닦고 본다. 혹시 나라고 오해할까 봐. 내가 가고 난 뒷모습에 눈을 흘길까 봐. 


아이를 낳고 생긴 강박 중 하나이다. 외출에 나서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까닭은 아이의 안전 때문도 그렇지만, 사실은 주변에 피해를 끼칠까 두려운 마음에 긴장하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맘충]들의 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님을 어필하기 위해.


이게 내 과도한 피해의식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언젠가 카페에서 휴지를 떨어트리고 간 애기 엄마의 뒷모습에 자기들끼리 모여 한숨을 쉬며 맘충이라고 키득거리던 알바생들이 잊히지 않는다. 평일 낮에 카페에서 아기를 안고 수다를 떠는 여자들을 보며 "남편한테 기생해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라고 말하던 사람이 떠오른다. 너무나 쉽게 사람을 벌레라고 칭하는 그들이. 그들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벌레가 되어버린 애엄마들이 나의 머리에서 둥둥 떠돌며 부유한다. 


사회가 각박하다. 현대인들은 예민하고 분노가 많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한치도 피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라는 말로는 넘길 수 없는 그런 감정들과 현상들이 있다. 그렇게 애기 엄마가 된 후 알게 되고 보게 된 세상은 예상보다 더 얇고 날카로워서 조심한다 하는데도 이미 나를 베인 뒤다. 


그래서 더욱 친절하게 말하고, 먼저 웃음을 띄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단속하고, 미리 사과를 하거나 양해를 구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장소를 고른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이런 행동들은 분명 좋은 자세이지만 어쩐지 불안이 낀 배려는 배려라기보다 생존에 가깝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그리고 격하게 표현하자면 사회적 계층이 낮아진 기분이다. 평민에서 천민이 된 느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는 건 불가능한데 불가능한 걸 해내려고 하는, 아니-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점점 비굴하게 느껴지고 작아진다. 


사람들의 말 따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에겐 비하 단어가 있다. 아저씨들은 개저씨, 학생들은 잼민이, 노인들은 틀딱 뭐 등등... 무시하면 된다. 그 단어를 쓰는 사람이 나쁜 거다.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준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역시 나만 욕먹는 게 아니라 나의 아이까지 욕먹는 것 같아서이다. 더 나아가 나와 같은 아기 엄마들까지 욕먹이는 것 같아 무시하려 해도 무시가 안되고 넘어가려 해도 넘어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느끼기에 사회가 [맘충]에게 더 가혹하게 구는 것처럼 느껴진다. 개저씨들이나 잼민이들의 잘못에는 '에이씨, 똥 밟았네'라는 느낌이라면, 맘충에게는 '네가 그런 짓을 해? 가만두지 않겠어'의 느낌이랄까. 더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보복을 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물론 이건 내가 내가 애기엄마라는 타이틀에 소속되어 있기에 더욱 민감하게 느낀 탓일 수도 있다. 모름지기 누구나 제 손톱밑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니까.


그렇다고 아기를 키운다는 빌미로 과한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정말 진상짓을 하는 사람들을 두둔하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잘못된 거고, 악하다. 허나 그런 사람들은 애기 엄마가 되기 전부터 진상이지 않았을까.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서가 아니라, 원래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맘충'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 쉽게 또 만연하게 쓰이는 현실이 슬프다. 


분명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 나간 외식인데 집에 돌아오니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디 내일은 오늘보다 마음이 편안하길, 세상 모든 비하 단어들이 잊혀지고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래본다. 





이전 07화 죽을 자유를 잃어버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