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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회전문가 Aug 21. 2024

아기를 낳는 걸 추천하냐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요 -

감기에 걸렸다. 아기와 내가. 내가 먼저 걸리고 아기에게 옮겨버렸다. 옮기지 않으려 육아하는 동안 손을 수시로 씻고 마스크 끼고 생활하고 잤는데도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아기에게 붙었다. 팔보다 작은 아기가 콧물로 인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파서 힘들었다. 그 작은 손에 주사를 넣고 수액을 꽂고 항생제를 투여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몇 배가 아프더라도 내가 대신 아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너는 아기 낳는 거 추천해?"


오래간만에 만난 모임에서 한 친구가 물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나는 바보같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결국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순간 우리 사이에는 당황한 웃음만이 둥둥 떠올랐다.


대답을 하지 못한 건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아이를 낳은 건 여태껏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고 가장 기특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이는 조금만 아프고 힘들면 도망치던 나를 용감하고 씩씩하게 만들어준 존재. 대신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는 존재니까. 과연 내가 어떤 일로 이런 감동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 가늠도 가지 않을 만큼 아이가 있는 현재가 매우 감사하다. 하지만.


육아는, 아이는, 죽을 때까지 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이런 거였다. 여유로웠던 아침이 사라지는 것. 취미생활을 할 수 없는 것. 아무리 졸려도 잘 수 없는 것. 천천히 밥을 먹을 수 없는 것. 친구와의 약속을 선뜻 잡을 수 없는 것. 항상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 끊임없이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것. 절망적인 뉴스에 전보다 몇 배는 더 두려움에 떠는 것.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깊어지는 것. 가끔은 나를 버려야 하는 것.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미룰 수 없는 절대적인 것.


그러므로 친구의 가벼운 질문에 가볍게 대답하지 못한 건 이 때문이었다. 감동과 죄책감이 한데 뒤엉켜있는 이 삶은 어느 날은 과분하게 행복하고 어느 날은 과분하게 무거우므로.

그런 이유로 내게 출산과 추천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단어였기에 쉽게 권유하고, 쉽게 추천하고, 쉽게 강요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생명을 추천할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친구의 진짜 질문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건가?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고민하고 망설이는 이유는 그것을 선택함으로 인해 혹시 미래의 자신이 불행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이해한다. 우리 주변엔 너무 많은 빌런이 있고 또 그 빌런이 가족인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으므로.

그러니 친구의 질문 또한 그 맥락이었을지도 모른다.

먼저 경험해 본 나에게 정말 묻고 싶고 듣고 싶었던 건 ‘아이를 낳는 게 좋겠니, 아니면 안 낳는 게 좋겠니’에 대한 대답이 아닌 ‘그래서 너는 지금 행복하니’라고.


만약 친구의 질문이 그런 의도였더라면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완전 추천해!”

너무 늦은 대답이지만 오랜 시간 생각한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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