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기 위해 정말 필요한 물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젖병? 분유? 기저귀? 아기 옷?
맞다. 그것들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곧이어 알게 될 것이다. 젖병 하나를 사면 젖병 세정제와 젖병 닦는 전용 솔과 젖병을 말리는 거치대와 젖병 꼭지 리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마치 쇼핑을 할 때 상의를 하나 사면 그에 맞는 바지가 없고, 바지를 하나 사면 그것과 어울리는 신발이 없듯 쇼핑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젖병을 사는 과정 또한 어떠한가. 나는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젖병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앓이를 방지하는 젖병, 꼭지가 엄마의 유두와 비슷한 젖병, 유리 젖병, 사각 젖병, PSU소재보다 PPSU소재가 더 좋고.... 아무거나 하자니 우리 아기가 걱정되고 대충 사면 헛돈을 쓰게 될까 봐 젖병을 하나 사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고심고심하여 샀다 한들, 아기가 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정말 젖(병)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미친듯한 쇼핑지옥보다 사람을 열받게 하는 것은, 바로 '아기'전용 제품이라고 하며 비싸게 파는 행태이다. 나는 정말 궁금하다. 젖병 세제와 일반 세제에 차이가 있는가? 일반 세제라고 해서 무언가 더 나쁜 게 들어가는 게 아닐 텐데 왜 마트에서 2~3000원이면 살 수 있는 세제가 아기용이라고 하면 15,000원에 판매가 되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바꿔보면, 오히려 아기를 위한 제품이 첨가물이 덜 들어가니 더 싸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라면보다 치즈라면이 더 비싼 것처럼 말이다.
그뿐이랴. 식자재는 더 하다. 이유식 전용 오트밀은 일반 오트밀보다 최소 두 배는 더 비싸고, 아예 판매상품에 '이유식 재료'라고 붙는 야채들은 한 단, 한 송이의 가격이 아닌 그램 당 가격으로 측정되어 일반 야채의 2~3배를 웃돈다. 무농약, 친환경, 무항생제... 그래. 좋은 거 알겠고 프리미엄인 거 알겠는데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이건 뭐 서울을 가지 않아도 눈 뜨고 코 베이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일반 세제나 용품들을 사자니 죄책감이 느껴지는 데다 어쩔 땐 공포까지 느껴진다. 내가 조금 돈 아끼자고 이걸 먹여서, 혹은 이걸 써서 아이가 환경 호르몬에, 농약에, 항생제에 노출되면 어떡하지? 나중에 아프면 어떡하지? 전자파와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해 자폐아가 많아졌다는데 그게 내가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해서 생기는 거라면?
잠잠히 들여다본다. 도대체 이 빌어먹을 걱정은 누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애덤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 나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그들. 그들은 누구인가. 나의 공포로, 부모들의 공포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내게 온 정보들을 떠올린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혹은 네이버 쇼핑의 상세페이지와 블로그. 이 책을 당장 읽히지 않으면 우리 아이가 멍청해질 것이며, 발달이 느려질 것이고, 혹여나 아이에게 자폐 또는 ADHD증상이 나타나면 다 당신 책임이라고 말하는 듯한 수많은 영상과 글들. 그곳에선 모두가 아이를 위해선 이 제품을 사야 한다고, 이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이런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실체 없는 공포로 부모의 소비를 부추겨 득을 보는 건 수많은 판매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판매자 입장에선 공포심이던 환심이던 소비를 이끌어 내는 것은 그들의 마케팅이며 능력이니까. 하지만 나는 소비자 입장에서, 광범위하게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가스라이팅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의 상황과 심리를 이용해 내 지갑을 지배하려는 그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때에는 그런 거 없이도 잘 키웠어. 어쩔 땐 지겹고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어른들 말씀이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니 가끔은 곱씹어보자. 모르면 몰라도 인지하면 벗어날 수 있는 게 가스라이팅이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이 제품이 이 가격이 맞나? 명심하자. 어떤 물건을 쓰고 안 쓴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상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