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늘 다짐했다.
태어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 죽는 것만큼은 내 의지로 죽겠다고. 운이 좋게 80살까지 살아있다면 꼭 마지막 생일을 즐겁게 보낸 뒤 그날 밤에 죽고 말겠다고.
삶의 데드라인을 80으로 정해놓은 까닭은 우리 할머니 때문이다. 괜찮다고 손을 내저어도 엄청난 힘으로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 넣어주시던, 맨날 남동생 괴롭히는 마할년(망할 년)이라 하면서도 거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던, 물김치를 좋아하는 날 위해 명절이면 빨간 김치통 한가득 만들어놓고 싸주시던 나의 할머니가 80살을 기점으로 급격히 약해지시더니 요양원에서 몇 년을 누워계시다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더 이상 해줄 치료도 없는데 치료를 끊을 수 없도 없고, 나아질 수 없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로 병원에 누워 손목에 바늘을 꽂은 채 죽음 만을 기다리셨다. 정신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3년을.
그러니 그 무섭고 서글픈 일을 겪지 않으려면 죽음마저 건강할 때 맞이해야 한다. 그건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알려준 현실이었다. 때문에 한 번도 그 결심이 흔들린 적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갓 성인이 되어서도, 그리고 30대가 되고 결혼을 한 후에도.
가끔은 80살 생일을 기다리며 어떻게 죽어야 아프지 않을까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는 살만큼 살아 어떻게 죽어도 호상이겠지만, 고통은 나이가 들어도 싫을 테니 방법을 찾고 싶었기에 별생각 없이 인터넷에 '자살하는 법'을 검색했다가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메세지와 자살예방센터의 전화번호를 받기도 하고, 사랑의 불시착을 보며 스위스에선 가능하다는 안락사 가격을 알아보기도 했다(아프지 않은 죽음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랬는데... 남편과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도중 여느 날처럼 나의 죽음 계획을 듣던 남편이 말했다.
"네가 만약 죽으면, 그것도 자살로 죽으면 우리 아기는 얼마나 슬퍼하겠니?"
그러게. 순간 숨이 멎었다. 나는 그저 미래의 내 모습, 내 상황만 생각했지 우리 아이가 받을 충격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아무리 내가 젊을 때부터 "엄마의 꿈은 80살 생일에 죽는 거란다"라고 말한다 한들, 아이 입장에선 '삶이 행복하지 않으셔서 자살을 택하셨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이도 중년일 텐데 충격받아서 쓰러질지도 몰라. 아아. 절대 안 된다. 우리 아기가 고통스러워하느니 차라리 내가 3년 요양원에서 썩어 죽는 게 낫겠어.
며칠 뒤, 꿈을 꾸었다. 아기의 정기예방접종을 하러 간 병원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점점 좀비가 되어가는 꿈이었다. 나는 좀비가 되어버린 의사의 품에서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빼내어 건물을 탈출했고, 그 길로 바로 대형마트로 뛰어가 카트 두 개 가득히 분유를 싣고 집으로 도망쳤다. 참 이상한 꿈이었지만 덕분에 깨닫게 되었다. 나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나 이제 진짜 죽으면 안 되는구나.
그렇게 거진 15년을 넘게 가지고 있던 나의 죽음신념이 허무하게 철퇴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새로운 신념이 피어났다.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고 죽자.
그리고 건강하게 죽자.
이번 다짐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