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믿기 힘든 진실을 얘기해줄까 한다. 이건 정말 아주아주 중요한 얘기이며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진리에 가깝다. 이 말을 듣거나 보는 모두가 믿지 못하거나, 부정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직접 겪어본 결과, 그리고 많은 경험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것은 아주 자명한 사실이다.
그 사실이란 바로, 아이가 없던 시절보다 아이가 존재하는 지금이 해야 할 일을 더 많이, 잘 해낸다는 거다.
이 문장을 읽을 많은 사람들의 어이없는 탄식이 들리는 것만 같다. 이해한다. 믿을 수 없을 테지.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루종일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다 보면 육체와 정신이 너덜거린다는 걸 똑똑한 현대인들은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어느 날엔 똥 쌀 시간도 없어서 아기를 안고 싼다는 것도.
허나 이건 진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이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다. 결혼 전 혹은 싱글 시절에 얼마나 게을렀건 간에 아이를 낳은 순간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학생 시절 방학 숙제를 개학 전날 모두 해치우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며, 마감 날이 닥쳐야지만 책상에 앉을 수 있는 직장인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똥꼬에 불이 붙어야 일을 하지 않나. 그렇다. 육아 중인 부모는 항상 엉덩이에 작은 불씨를 달고 다니는 격이다.
미루는 순간 망한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진짜 망한다. 대차게 망한다. 나만 망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망한다. 여기서 우리란, 내 가족이다. 내가 게을러지는 순간 내 가족, 특히 내 아이가 힘들어 진다. 그러므로 현재 나에겐 '나중에'따위는 생기지 않으며, 여유는 존재하지 않고, 남은 것은 오직 현재. 지금. 당장. 뿐이다.
할 일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책임져줄 어른은 없다. 그 어른이 나니까. 아 몰랑~하고 집안일을 미루면 아기가 밥을 못먹고, 침과 이유식, 토사물이 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을 수 없으며, 100일, 돌, 명절과 같은 각종 행사들을 챙길 수 없고, 어쩌면 성장이나 발육이 더딜 수도 있으며, 크게 아플지도 모른다. 또 일을 하지 않으면 나만 가난에 사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나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아기까지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고, 아직은 뭔지 모르지만 분명 생길 것이 분명한 문제들을 피할 수 없이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그 뿐이랴. 게다가 하루종일 아기와 시간을 보낸 후 밤잠을 재우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온다. 아기를 키우는 기쁨과는 별개로, 내 삶이 없어졌다는 공포와 피로감이 덮쳐오는 거다. 그럴 때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하고 싶었던 일이나 휴식을 취하며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육아는 한 두달 바짝하고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므로 본인을 돌보는 일에 소홀히 하면 더 큰 우울, 더 큰 불화가 생긴다.
그렇기에 시간이 많던 싱글일 때는 미루기만 하던 글쓰기, 독서, 요리, 집안일, 업무, 각종 취미생활들을 아기가 자는 순간 해치우듯 해내게 되었고, 그렇게 얼떨결에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어릴 땐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고 염불을 외워도 못하겠더니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어떤 날들은 피곤에 절어 비척비척 남은 집안일들을 해치우고 샤워 후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하다 자지만, 그런 밤을 보낸 다음 날은 무력감이 한층 심해지고 점점 쌓이기만 하는 해야 할 일들의 기에 눌려 고통스러워지므로 할 수 있을 때 해놓는 버릇이 들었다.
참 신기하다 게으를 땐 못하는 이유가 수십가지는 됐었는데, 이유를 댈 시간조차 없으니 무엇이든 하게 된다. 이게 바로 <Just do it> 이로구나.
언젠가 매일 바쁘게 사는 어른에게 "저는 잠도 많고 게을러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너도 어른이 되면 저절로 부지런해져."라고 대답했었다. 어쩌면 그 말이 지금 이 상황을 함축해서 얘기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되면 부지런해진다. 부모가 되면 부지런해진다.
그러니 혹시 자신이 게을러서 고민인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결혼해 ㅎㅎ 애기 낳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