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고 친한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가 말했다.
"너는 코로나 때문에 조리원 동기가 없어서 어쩜 좋니."
언니는 진심으로 안타까워 했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오히려 그 말을 듣고 한숨이 나왔다.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조리원 동기가 없어서.
조리원 동기는 군대 동기만큼 관계가 끈끈하다는 말이 있다. 하기야, 같은 고통을 경험한 데다 아기마저 하루 이틀 차이로 나이가 동일하니 유대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아기를 낳고 나면 관심사가 바뀌어 대화가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조리원 동기는 매일 같은 일상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대화가 너무 안 끊겨 문제(?)라고들 한다. 게다가 집 근처나 직장 근처로 병원의 위치를 잡는 경우가 많아 지역까지 비슷하니, 아이를 데리고 자주 만나 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부터 조리원 동기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성격이 나빠서? 뭐, 그것도 어느 정도는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내향형 인간에 눈치를 많이 보고 낯을 많이 가리니까. 허나 그것보다 더 큰 이유를 차지했던 것은 3가지였다.
첫 번째, 비교. 저 집 아이는 100일이 지나 통잠을 잤데, 저 집 아이는 혼자서도 잘 논데, 저 집 아이는 벌써 윗니가 나왔데 하는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들이 첫 아이를 키우면서는 크게 느껴진다. 혹시 우리 아이가 발달이 느린가, 아니면 너무 빠른가, 왜 우리 아기는 안 자지, 안 먹지, 안 놀지 하는 자잘한 비교와 고민을 떠안으며 육아를 하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연락. 마음이 맞는 상대를 만나면 친해지기 위해서, 혹은 친해져서 즐거우니까 하루종일 연락을 하게 되는 것이 불문율. 그럼 아이와 놀아줘야 할 때 핸드폰을 하게 될 거고 쉬어야 할 때도 핸드폰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적당히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자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유혹과 도파민에 약하고 그렇다고 카톡에서 유령이 되는 것도 선호하지 않으니 분명 단톡에서 열심히 떠들 게 분명하니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만남. 일단 나는 아파트 단지가 아닌 경기도 외곽 단독주택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만나려면 차를 타고 30분은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초대를 하자니 대중교통이 편하지 않아 차가 없으면 오기 힘들고 택시비도 많이 나와서 가볍게 놀러 가고 가볍게 헤어지는 게 불가능 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리고 애초에 나의 남편은 자영업자라 저녁에 출근을 해 낮에는 항상 집에 같이 있어 딱히 누굴 만나서 놀만큼 심심하지 않다.
이런 이유들로 조리원 동기들을 만들지 않았(못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요즘은 유튜브나 블로그에도 육아 꿀팁이 넘쳐나는 시대이기도 하고, 맘카페가 잘 되어있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 검색하면 된다.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성격에 맞지 않는 걸 참아가며 억지로 친분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문화센터에 가면, 유치원에 가면, 학원에 가면 그에 맞는 인연이 또 생기고 멀어진다.
모임과 관계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지금 아기에게 필요한 건 친구나 꿀팁이 아니라 부모, 바로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