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회전문가 Jul 17. 2024

자연분만을 원한 딱 한 가지 이유

"결정하셨어요?"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는 정말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입이 옴짝달싹 얼어붙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어물거리는 나에게 앞에 앉아있는 그가 한마디를 더 건넨다.


"자연분만 시도해 보실 건가요?'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다음 날부터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출산방법이었다. 처음으로 맘카페에 가입해 각 분만의 장단점을 모조리 찾아보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해결은커녕 선택의 난이도만 점점 올라만 갔다. 남자에게 군대썰이 있다면 여자에겐 출산썰이 있다더니, 100명의 산모에겐 100개의 출산후기가 존재했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시도했다가 끝끝내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진통이란 진통을 다 겪고 응급제왕을 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제왕을 했음에도 전혀 아프지 않아 다음 날부터 멀쩡히 걸어 다녔다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제왕 후 낫는 과정에서 장기가 유착되는 바람에 신생아를 보지 못하고 몇 주간 고통에 시달리며 입원을 해야 했단다.


그러니 자연분만은 일시불이요 제왕절개는 할부결제라는 이론(?)은 평균에 불과할 뿐이며, 내게 해당이 될지 안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문제라는 게 결론이었다. 심지어 믿었던 의사 선생님마저 “속골반이 좁은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시도해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라는 말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속골반이란 무엇인가. 엉덩이가 크다고 무조건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속골반인데, 속골반의 다른 이름은 두덩뼈 혹은 치골이라고도 부른다. 이게 넓어야 한다. 그리고 잘 열려야 한다. 그걸 확인하는 방법은 내진이라는 이름의 진료로 알 수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 질 안에 손을 넣어 확인하는 걸 뜻한다.  차갑고 거칠거칠한 비닐장갑이 굉장한 고통을 주는데, 그렇게 아픈 걸 참고 내진을 받아도 100% 확신을 내릴 수 없다. 출산 시 나오는 호르몬이나 몸의 상태에 따라 속골반이 얼마나 열리는지 다르기 때문이다. 고로, 모든 것이. 전부. 다. 운이다.


여러 출산 선배들에게 물어도 제왕을 한 사람은 제왕을 추천했고, 자연을 한 사람은 자연을 추천했기에 나의 선택은 점점 더 미궁에 빠져갔는데....


그랬는데. 정말 작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 길고 지난한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기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샤워 때문이었다. 자연분만 시 다음 날부터 씻을 수 있지만, 제왕절개 시 일주일은 씻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분만을 하게 되면 온몸이 땀범벅에 밑에는 피가 찐득할 텐데 못 씻는다고? 머리를 안 감으면 내 머리냄새에 잠을 자지 못하는 나로서는 씻지 못한다는 고통이 출산의 고통을 이겨버렸다. 그러니 무조건 자연분만으로 낳아야 한다는 의지로 예정일까지 출산 유튜브를 보며 힘주는 법도 열심히 연습했다.


그렇게 예정일 하루 전, 새벽 5시에 오는 가진통에 샤워를 한 뒤 소고기와 열무비빔밥을 야무지게 비벼먹고 병원에 가 오전 11시 21분에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얼굴에는 실핏줄이 다 터진 채 눈물, 콧물, 땀, 피범벅이 되어 아기의 생김새와 안부를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남편에게 말했다. “내일 씻을 수 있어.”


이게 바로 101번째 출산 후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