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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회전문가 Jul 24. 2024

큰일이다. 내 아기가 예쁘지 않다.

39주 4일. 아기가 내 뱃속에서 머문 시간.

그동안 나는 아이와 함께 먹고 자고 놀며 우리만의 추억을 쌓았다.


태아도 딸꾹질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는 웃음이 터져 한참을 피식거렸고, 방귀를 뀌는 건지 트름을 하는 건지 속에서 보로록-하는 물방울 터지는 느낌이 날 때엔 이 기분을 나만 안다는 아쉬움에 남편을 붙잡고 찰나의 순간을 영겁의 시간 동안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 임신 전엔 이틀에 한 번 꼴로 먹던 마라탕이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고, 생전 입에도 대지 않던 퍽퍽한 닭가슴살이 처음 맛본 고기인 양 고소하고 담백하게 느껴지고, 오이싫어 인간이 고추장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애착인형마냥 손에 오이를 들고 다니게 되었을 땐, '우리 아기. 엄마보다 현명하고 지 살길 야무지게 챙기는구나' 하며 낳기도 전에 [혹시 우리 애가 천재?!] 병에 걸리기도 했으며,


여느 드라마 혹은 각종 매체에서 보았던 아이를 낳고 그 응애응애하는 작은 것을 품에 안으며 감동과 기쁨에 찬 아름다운 첫 만남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루하루 둥그런 배를 수천수만 번 쓰다듬으며 아기를 만나는 날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성격을 가졌을지 추측하면서 남편과 밤새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했다. "전부 상관없어. 건강하기만 하면 돼. 네가 어떤 사람이던 우리는 너를 무조건 사랑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대망의 출산날. 역시 현실과 이상에는 아주 큰 간극이 있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현실은 감동이고 나발이고 엄청난 진통에 앞이 노랬고, 힘을 주느라 눈과 얼굴, 심지어 팔뚝까지 핏줄이 전부 터졌으며, 어찌어찌 낳은 후엔 아기가 태변을 먹은 탓에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느라 출산 전 상상했던 가슴팍에 안기는 아름다운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심지어 안경이 어디로 갔는지 (내 시력은 -6.00이다) 눈에 뵈는 게 없어 저것이 내 애긴가 아니면 피를 닦아낸 휴지덩어린가 싶었다. 전 글에 아기의 생김새와 안부를 확인했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은 아기에게 눈코입이 있는지, 손가락 발가락이 잘 있는지 정도의 확인이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짬에서 오는 바이브의 태연함을 갖춘 간호사의 말로. 

"자- 여기 눈코입 잘 있죠? 손가락 10개 맞죠? 발가락 10개 확인하셨죠? 아빠, 사진 찍으세요."


그렇게 난 기다렸던 아기얼굴을 보지 못한 채 밑을 꿰매고 회복실로 옮겨졌다. 거기서 처음 보았다. 남편의 핸드폰으로. 나의 아기를. 그런데. 이게 뭐야.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벙쪄있다가 잠시 뒤 간신히 한마디를 뱉었다.


"아버님이다. 내가 아버님을 낳았어."


아버님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정말 단 1%도 없다. 아버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하고 멋진 사람이다. 아버님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정신력으로도, 힘으로도 아버님보다 강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체형 또한 장사체형으로 이목구비도 그에 걸맞게 다부지시다. 진한 눈썹, 호랑이 같은 눈매, 크고 넓은 코, 도톰을 넘어 두툼한 입술. 아들을 낳았다면 아버님을 닮은 것에 박수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낳은 아이는 딸이다. 나는 적장의 목 따위는 한 번에 쳐버릴 장군 같은 딸을 낳았다.


이미 출산 선배들에게 숱하게 들었다. 처음 아기는 양수에 퉁퉁 불어 못생겼다고. 하지만 그 말을 감안해서 보더라도 아기가 너무 못생겨서 눈물이 핑 돌았다. 원래 아무리 못생겨도 내 새끼는 예뻐 보이는 게 아니었나? 출산 전 네가 어떤 사람이던 무조건 사랑하겠다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거지? 아가. 외모 지상주의 엄마라서 미안해.


충격에 이루 말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보는 남편도 덩달아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냐. 실제로 보면 얼마나 예쁜데. 사진을 이렇게(?) 찍어놔서 그렇지,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났다니까." 남편은 손을 내저으며 항변했지만 나는 속으로 만약 딸이 외모로 나를 원망하면 어떻게 하나. 세포분열은 네가 한 거라고 책임을 회피할까. 아니면 성형수술을 시켜줘야 하나. 한다면 학생 때 시켜줘도 되나. 따위의 생각뿐이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를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예쁘다는데 힘들게 낳아놓고 외모 가지고 그럴 수가 있냐며 혀를 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눈이 달렸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아무리 봐도 나의 딸은 딸처럼 생기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아들이다.


혼돈의 카오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때. 간호사가 망사천이 덮여있는 작은 침대를 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망사천을 드러내자 아주 작은 아이가 아주아주 작은 입으로 하품을 했다. 기우와 달리 나의 아기는 너무 예뻤고 천사 같아서 눈물이 났다. 한참을 울다가 왜 사진을 그렇게 찍어서 날 놀라게 했느냐고 남편을 때렸다. 그리고 정확히 삼일 뒤, 역시 아버님 얼굴이라며 조리원에서 울었다.


그 후로 벌써 10개월이 되었다. 젖살이 조금 빠지고 길어진 우리 아기는 눈은 커지고 코는 작아지고 입술은 오동통해져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러워졌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애들은 크면서 더 예뻐진다. 이렇게나 예뻐질 걸 쓸데없이 울고 미안해했다니 과거의 내가 한심해서 웃음이 난다. 

현재 나는 남편이 연예인이었다면 슈돌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서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 아기의 귀여움을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할 만큼 아기를 키우는 동안 내 새끼 필터가 점점 진해진 상태다. 누군가 우리 아기가 못생겼다고 하면 지구 끝이 뭐야, 우주 끝 아니 사후세계까지 쫓아가서 괴롭힐 거다. 내 모성애를 걱정했던 누군가여, 걱정을 내려놓으세요.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아이가 예뻐서. 비록, 나갈 때마다 아들이냐는 얘기를 듣긴 하지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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