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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_ 결국 모두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청혼 후 다시 숨어버린 그 아이

by 윤지아

2012. 12.

그렇게 또 그 아이와의 연락이 끊겼다.

기나긴 부재는 이별을 의미하는 것일까.

처음으로 겪는 이별이라 어떤 형태가 전형적인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만남의 종지부는 누군가 일방이 명확히 통보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계약 해지 통지서처럼, 일방의 최고로 인하여 법적 효력을 잃게 되는 그런 마지막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통화. 그 아이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질문은 황당하게도 청혼이었다.


"24시간을 줄게. 나한테 와줘. 내가 내일 전화하면 넌 대답하는 거야. “


단호하지만 결심한듯한 그 아이의 마지막 말.

아니, 마지막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살아있는 한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는 모르는 것이니까.

반복되었던 그 수많은 마지막이 될 뻔한 순간들은 모두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마지막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무리를 하는 방법을 몰라서였을까.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의 청혼의 말은 로맨틱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체념처럼 들렸다.

약속한 24시간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 아이는 연락이 없다.

아마도 이유 있는 부재일 것이다.


열 살 때부터 영국으로 건너가서 산 그 아이는 이미 영국 시민권자로 이중 국적이긴 했으나 사실상 영국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나는 단 한 번도 한국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토종 한국인.

그것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그런 여자아이말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문화와 생각. 그 아이의 개방적인 라이프 스타일과 적극적인 표현 방법 등 모든 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비슷한 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바라보기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울메이트였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지구 정반대에 살고 있던 그 아이와 내가 이런 인연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기도했다.

내 인생의 크고 작은 도전과 성공 그리고 실패까지도 모두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맞춰진 시계 같았기에.

오롯이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여정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2006. 3.

1년의 재수생활을 마쳤지만, 내가 선 곳은 결국 다시 항공과 강의실이었다.

고등학교 교실과 다름없는 답답한 이 공간.

교복만큼이나 획일적인 까만 정장차림의 아이들.

새 학기, 새내기, 대학의 자유와 같은 파릇파릇한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하다. 1년 전과.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내 모습도 결과적으로는 똑같다.

‘그렇게 싫었으면, 자퇴하고 재수할걸’

돌아오기 싫은 그 마음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갈 원동력이 되어줄 줄 알았던 반수.

그러나 그 결과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그 보험적 성격을 실현시켰을 뿐이었다.

휴학으로 한 다리 걸쳐놓은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난 첫 번째 수능 때보다 더 낮은 성적을 받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접수한 대학의 불합격 통지를 받는 날, 나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울었다.

두 번째 도전에 실패했다는 괴로움과, 다시 원치 않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적성에 맞지 않은 공부를 해야 하고,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 때문에.

아직은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할 수 있는 시작점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에 소리 내어 울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 나는 언젠가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꿈 많던 내 모습은 그저 비현실적인 과거의 나일뿐 현실의 나는 까만 정장차림으로 1년 전과 같은 강의실에 앉아있을 뿐이다.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어 다시 항공과 강의실을 조용히 둘러보았다.

작년과 똑같은 분위기.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 정장차림의 앳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과, 머리에 그물망 핀을 한채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는 여자아이들이 보였다.

이미 합격자들과 연락해 미리 만났던 아이들도 있는지, 벌써 친해 보이는 무리도 있다.

모두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쁜 외모에 날씬하고 큰 키가 돋보였다.

“그래도 붙은 건 기분 좋지 않아? 예쁘고 공부 잘한다는 뜻이잖아~ “

작년 이 학교에 합격통지를 받은 날 친구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 국문과로 낸 정시 세 곳 중 어디든 붙겠지 하는 생각에 흘려들었던 말이었다.

안전장치로 딱 한 곳 지원한 전문대학이었다.

지성과 미모를 강조하는 슬로건.

친구의 그 말이 무색하게도 1년의 재수생활로 인해 5킬로 정도 살이 찐 나는 이 중에서 가장 못생기고, 나이 많은(비록 1살이지만, 어릴수록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학생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반에는 나처럼 1년 동안 반수 생활을 거쳐 복학한 나와 같은 처지의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경아라는 아이였는데, 처음에는 너무 반가웠다.

반별로 시간표가 짜여 단체로 수업을 같이 들어야 하는 전문대의 특성상 1학년인 06학번아이들에 섞여 있는 05 선배의 입장은 굉장히 난처했기 때문에 하나보다는 둘이 나았다.

항공과의 특유의 90도 인사와 고작 한 살 차이의 선배들을 하늘처럼 대해야 하는 것이 이곳의 문화.

그 어렵고 두려운 대상인 선배가 두 명이나 같은 반에 있다는 사실이 06학번 아이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난 휴학하고 엄마랑 같이 미국으로 유학 다녀왔어. 엄마가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시거든”

학생이라기보다는 어딘지 아줌마 같은 푸근함을 주는 분위기를 풍기는 경아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경쾌하게 자기를 소개했다.

이 학교(죽어도 우리 학교란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보다 훨씬 좋은 대학을 가고도 남을 성적을 받은 경아는 바보 같게도 4년제 원서 접수일을 놓쳐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약간은 독특하지만 똑똑하고 영어도 잘하는 친구라 학교생활이 조금은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도함도 잠시 경아는 생각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눈치가 없는 타입의 아이였다. (미국 파라 그런지 확실히 코드가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06학번 여자 후배들과 조금 친해지려고 대화를 하고 있으면, 경아는 어김없이 달려와 훼방을 놓았다.

아니, 자기 딴에는 그저 대화에 끼고자 몇 마디 보탠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퉁퉁하고 아줌마 같은 말투, 너무 큰 목소리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경아를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경아가 날 의지하고 항상 붙어 다니니, 난 점점 더 같은 반 06학번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너 다른 학교 간다고 재수한다더니, 결국 다시 돌아온 거야?"

이미 2학년이 된 05학번 친구들 또한 날 만나자 반가워하긴커녕 비아냥 거렸다.

그리고 06학번들 틈에 끼어 있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그렇게 06학번들 사이에서는 선배라서 날 어려워하고, 친해지고 싶어도 옆에 있는 경아가 더더욱 날 고립시켰으며, 05학번인 2학년 친구들마저 날 멀리하는 박쥐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힘든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하교 후 종우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종우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만난 동급생 친구이자 나의 첫 남자친구이다.

난생처음 내가 밸런타인데이에 정성껏 색종이로 호박 접기 초콜릿 포장을 하게 만들었던.

월 초 Ting요금제를 다 써버릴만큼 밤늦게까지 문자를 주고받게 만들었던 첫 남자친구말이다.

종우는 성실하고 착하고 나에게 헌신적인 그런 남자친구였다.

종우는 1년 반수기간 동안 나의 투정과 짜증을 다 받아주었으며, 수능날 점심시간 시험장 교문 앞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도해 주었던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었다.

여고 축제 때에도 우리 동아리에 와서 방명록을 남겨줬던 종우는 나의 꿈 많던 학창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학교로 돌아온 나의 좌절한 하루하루의 투정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다.

말수가 별로 없고, 결코 흥분하는 일이 없이 차분한 성격의 종우는 그저 들어주는 게 전부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답답한 학교생활과 하교 후 종우와 데이트를 하며 며칠을 보냈다. .

아직 학기 초라 그런지, 수업시간은 대부분 수업 진도를 나가기보단, 자기소개를 시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4년제 대학과는 달리 반별로 움직이는 체계의 전문대는 2년 내내 같은 반 학생들과 같은 시간표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처럼 모두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교수님들께서 자기소개의 기회를 주시는 듯했다.

난 05 선배이긴 하나,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잘 지내고 싶다는 내용으로 간단히 소개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대부분 자신의 고향이나, 취미, 잘 지내자는 이야기 따위로 간단히 소개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서툰 한국말로 자신을 Tom이라 소개했다.

'톰? 왠 톰? 고양이 톰? 뭐야 저 영국식 발음은... 왠 잘난 척..'

다들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은 영국 런던에서 왔고, 누나가 이 학교 출신으로 스튜어디스가 되었다며, 누나를 따라 자기도 같은 길을 걷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열 살 때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쭉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며, 첫날부터 남자선배에게 반갑다고 허깅을 했다가 호되게 혼나서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이하고 꽤 유쾌한 아이였다.

그리고 06학번이긴 하지만 나랑 나이는 같았다.

1년 정도 영국에 있는 의대를 다니다가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서 자퇴하고 이 학교로 왔다고 한다.

4년제 진학에 실패한 나로서는 그 말이 참 재수 없게만 들렸다.

어쨌든, 재밌는 아이인 건 확실하지만, 고지식한 나와는 전혀 맞지 않을 아이라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반대표가 강단으로 나왔다. 오늘 수업이 끝나고 개강파티가 있다고 했다.

대학 후문은 젊은 열기에 맞춰 수많은 술집들이 즐비했고, 그중 안주가 가장 알차게 잘 나오는 지하에 위치한 술집으로 예약이 잡혔다.

나는 이런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술자리는 더더욱 싫어한다.

하지만 앞으로 매일 볼 아이들과 반별 단체생활을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고등학교의 연장인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고등학교때와 다른 점이라고는 술집에 가도 된다는 것 정도.


억지로 들어온 술집은 간접조명만 은은히 있는 어두컴컴한 벙커 같다.

이 시끄러운 음악소리 속에서 아이들과 대화라도 하려면 평소보다 몇 배로 소리를 쳐야 간신히 들릴 것이다. 아직은 서먹한 우리들은 모두 쭈뼛거리며 대충 자리를 정해 앉았다.

난 도망가기 쉬운 테이블 끝자리를 선택했다.

아이들의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더욱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1년 전으로 돌아온 느낌.

나아가지는 못한 채 다시 되돌아와 정체된 느낌.

시끄러운 술집의 음악소리와 대결하듯 소리 높여 떠드는 말소리들.

지하의 답답한 공기.

한 가지 좋은 점은 내가 선배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나는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은 틈을 타서 화장실에 가는 척 가방을 들고 슬그머니 일어서서 나왔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카운터를 지나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의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탁 하고 잡았다.

"선배님, 어디가십니까?"

나는 너무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톰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왜……….’

이 자리를 가장 즐기고 있던 이 아이가 여기에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화장실을 가다가 우연히 빠져나가는 나를 발견한 것이리라.

“아, 급한 일이 있어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잡힌 오른팔을 그 아이의 손아귀에서 빼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바쁜 척 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라 밖으로 나왔다.

'역시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이네’

여기저기 붙임성이 좋아 보였지만, 지금까지 나랑은 한마디도 한적 없었다.

한 번도 얘기해 본 적 없던 같은 반 아이와의 첫 대화가 하필 몰래 도망가다 들킨 술집에서 라니.

역시나 그 튀는 존재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첫마디였다.

'게다가 첫 대화에 팔목까지 잡히다니'

도망치듯 나와 빠르게 걸어서인지 학교 후문 앞 버스정류장에 금방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타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에게 잡혔던 오른팔에 왠지 아직 당혹스러운 느낌이 남아있는듯 하다.

그래도 선배인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말을 걸어 준 사실이 고마워 조금은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렇다.

할 수 없이 이 학교로 돌아왔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투덜거릴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꿈을 향해 더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어쩌면 그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일에는 그 이유가 있음을 알기에,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해보자고 다짐했다.

차창밖 밤 풍경은 가게들의 네온사인 불빛들로 밝게만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개강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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