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Prologue

그 아이의 기억 속 나는 어떤 계절의, 어떤 표정의 나일까.

by 윤지아 Aug 13. 2024
아래로

2023.11.

퇴근길임에도 공항철도는 그리 북적이지는 않아서 좋다.

7시 퇴근인 회사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앉아본 기억은 없다.

나는 오늘도 매일 타는 칸 같은 자리에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서있다.

딱히 의식한 건 아니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몸이 한강을 건널 때 즈음을 기억해 내고는, 책에서 눈을 떼 창밖을 바라본다.

신기하게도 거의 놓친 적이 없다.

연신 차창밖의 배경들이 빠르게 시야를 스치며 덜컹거리다가 한강을 지날 때면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진다.

강물처럼 천천히 흐르듯 지나치는 풍경 속 방화대교의 불빛이 수면 위에 일렁인다.

나는 강의 절반정도에 다다를 때까지 숨죽여 그 불빛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짙은 남색의 밤하늘과 깊고 푸른 강물은 수면 위에 뒤섞여 하나의 우주 같다.

노랗게 빛나는 다리의 불빛들만이 그 경계를 가른다.

창에 비친 나는 창밖의 풍경 속에 어색하게 떠있는 것만 같다.

 

까만 정장 바지에 회색 티셔츠,

엉덩이까지 덮는 길이의 루즈한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나는 딱딱해 보이지도, 가벼워 보이지도 않는 적당한 세미 오피스룩 차림이다.

 

어깨 아래까지 웨이브 진 머리카락은 조금은 짙은 브라운톤, 가르마를 따라 조금 길게 늘어뜨린 앞 머리는 턱선을 따라 커튼처럼 드리워진다.

물결처럼 어리어리 해 보이는 창 속 내 얼굴은 뾰족한 턱만은 뭉개지지 않고 선명하다.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 우리 지아 삐숙이 됐네 “

언젠가 한강을 가르고 달려 오랜만에 재회한 그 아이가 처음으로 건네었던 말.

 

흐릿하게 비치는 내 얼굴 뒤 한강은 어느새 정체된 자동차의 빨간불빛 가득한 도로 위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다.

 

삼십 대 후반의 내 실루엣은 예전과 같아 보인다.

그러나 변한 것이 있다면 행복해 보이는 모습 속 왠지 모를 쓸쓸함이 깃든 분위기일 것이다.

이런 아우라는 시간이 흘러 세월이 가져다준 것일까.

지친 하루의 끝 마주한 내 모습이 풍기는 이런 분위기가 왠지 나는 마음에 든다.

 

만약 지금 그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그 아이는 과연 나를 무엇으로 표현해 낼까.

궁금했다가 금세 궁금하지 않다는 확신에 찬다.

내 기억 속 그 아이는 파란 트렌치코트를 입고 반테안경을 쓴 환한 미소가 멋있는 2011년 겨울 그 모습 그대로다.

이맘때라는 생각에 정겨워 미소 지었다가, 벌써 열 번도 넘게 이런 겨울이 지났다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졌다.

 

그 아이의 기억 속 내 모습은 어떤 나일까.

어떤 계절의, 어떤 옷을 입은, 어떤 표정의 나일까.

 

불안했고 불완전했던 이십 대.

아직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꿈 많던 그 온전한 나 자체를 기억해 줄 한 사람.

그 아이의 기억 속 내가 그립다.

그리고

그 아이도 말이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