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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뭐 하고 싶어?

취업난이 준 선물

by 정운 Mar 26. 2025

예전에는 잘 산 하루란 곧 바쁜 하루를 뜻했다. 맛집 앞 끝없이 늘어선 손님들처럼, 오늘의 할 일 목록에 빼곡히 적힌 일들을 순서대로 해치우는 하루 말이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완료한 할 일들 옆에 체크표시를 바라보며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고 뿌듯해했다. MBTI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J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렇게 계획들로 가득한 하루에 익숙했고, 그렇게 사는 스스로에게 도취되곤 했다.


하지만 취준 생활이 길어지면서 할 일 목록이 매일 비슷해졌다.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규칙적으로 공부도 하고, 가끔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루틴이 단순해지고 한가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할 일 목록을 보며 문득 스스로가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이게 뭐야, 하나도 멋지지 않잖아. 남들은 야근이다 뭐다 바쁘게 사는데,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불행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남과의 비교라더니,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을까 싶었다.


울적해져 혼자 있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동굴로 들어서던 그때, 나를 돌려세운 말이 있었다.


'매일 아침,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단순한 건지, 귀가 얇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나를 깊이 흔들었다. 나는 자의든 타의든 매일 누군가의 지시나 어떤 일에 구애받지 않고 내 하루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현실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그 자유를 몽땅 놓쳐버리려 하고 있었다. 손에 황금보다 귀하다는 시간을 쥐여줘도 내팽개치려 했던 거다.


그래서 이제 오늘의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내가 좋아서 할) 일을 적어보기로 했다. 더 이상 빽빽한 할 일 목록에 집착하지 않고, 그때그때 내가 ‘선택’하기로 했다. 세상이 내게 ‘취업난’이라는 레몬을 줬으니, 나는 그것을 ‘시간의 자유’라는 레모네이드로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현실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으니 이왕이면 즐겁게, 오히려 누리며 보내야지. 내 뒤를 바짝 쫓는 개떼 같은 해야 할 일들에 떠밀리는 하루도 물론 보람차지만, 하늘도 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통화도 하며 여유 있게 보내는 하루 역시도 충분히 잘 산 하루니까. 어제는 밀린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보냈으니, 오늘은 소파에 앉아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는다. 내일은? 내일 아침의 나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오늘 하루는 뭐 하고 싶어?"


사진: Unsplash_Charity Beth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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