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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Jun 29. 2023

전 여친에게 연락하는 일

1.

아침은 꼭 챙겨 먹어가 적힌 포스트잇을 떼어내 냉장고 문에 붙인 이후로 6개월이 지났다. 6개월 동안 냉장고에 잘 붙어있는 포스트잇과는 달리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실은 그동안 포스트잇의 메시지와는 달리 아침을 챙겨 먹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견과류와 달걀프라이 그리고 건강음료 등으로 아침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였다. 아침을 먹으면서 영양제도 꾸준히 먹으니 아침마다 느꼈던 피곤함이 사라져서 뭔가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주말에 친구들과의 모임약속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세희를 보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잘 지내니라고 하기엔 촌스러웠고, 뭐해?라는 말은 뜬금없고, 행복해라라는 말은 작별인사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런 말들이 이제껏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지겹다고 생각했다. 간혹 세희의 인스타그램을 보거나 친구들에게 세희의 소식을 듣곤 했는데 가장 먼저 궁금증이 들었던 건 세희의 남자친구 존재였다. 세희와 친한 친구들 역시 나와는 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한 달 전에 스케줄이 겹쳐 가지 못했던 대학 선배의 결혼식에서 세희를 봤다고 한 민철이 세희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만날 때 됐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며칠간 세희가 내내 떠올라서 도무지 일이 잡히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읽씹을 당하든 아니든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결국은 세희에게 예약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예약메일은 업무를 하면서도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었다. 다음날 출근 시간에 맞춘 9시 메일 예약, 일과 중 업무를 다하고 나서 퇴근 시간 전 메일 예약 이렇게 메일을 예약해 두면 굳이 메일을 보내고 나서부터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메시지와는 달리 메일은 읽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거기다가 스팸으로 되어 있다면 내내 확인을 못할 수도 있었다. 메일의 내용으로는 간단했다. 얼굴을 한 번 보자는 내용이었다. 아니 한 번 얼굴 보자 였을 수도 있다. 메일이 제대로 갔는지 내내 초조했다. 그 이후로 며칠을 수신확인을 확인했지만 읽지 않음으로 되어 있었다. 메일을 보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고 메시지를 보내진 않은 채로 3개월이란 시간이 금세 지났다.     

“전 연애는 어떤 연애였어요?”     

소개팅으로 만난 미현과 두 번째 만남에서 연애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나는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무례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 전과는 달리 진지함이 돋보여서 나는 오랜만에 긴장감 없이 차분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앞으로의 우리 관계와 그리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1년 조금 안된 것 같아요. 만난 건 1년 정도 되었고, 서로 하는 일의 시간이 달라서 만날 시간이 서로 없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던 것 같네요.”     

나는 미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호감은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알 수 있었다. 미현은 나에게 어떤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호감이 적진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순간들을 보냈다.     

“미현 씨는요? 미현 씨 전 연애는 어떤 연애였어요?”     

“아 저는 연애는 서툴러서요. 200일 정도 만난 것 같고 서로가 서툴렀어요. 저도 연애경험은 두 번째여서 그런가 봐요.”      

나는 능숙하다와 서투르다를 떠올렸다. 능숙한 연애는 어떤 것이며 서툰 연애는 어떤 것일까. 그녀는 전 남자 친구와 서투른 연애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세희와 어떤 연애를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결국 헤어져야 했다면 그건 서로 서툴렀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즐거웠어요. 다음 주 주말에 뭐 하세요? 이번에 범죄도시3 나왔던데 영화 보러 갈래요?”      

나는 첫 번째 만남과는 달리 두 번째 만남에서는 헤어지기 전 애프터를 건넸다. 상대가 나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어렴풋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님 착각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세희랑은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남은 연애세포가 남아있다면 지금은 최저치일지도 모르겠다. 온통 모르겠다로 가득 채우며 밤 풍경을 바라보며 걸었다. 노래는 자꾸만 슬픈 가사만 들렸다. 어제 헤어진 것도 아닌데도 괜한 청승인 것 같아서 다시 감정을 추슬렀지만 한 번 느낀 슬픈 감정은 옅어져 떨어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달라붙었다. 그녀가 애프터를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도착해서 형광등을 켜지도 않은 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의 조명으로 인해 포스트잇이 떨어진 것을 가만히 보았다. 평소와 같았으면 포스트잇을 발가락으로 잡아서 쓰레기봉투로 던졌을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일 아침은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포스트잇을 손으로 주어서 유리테이프로 포스트잇을 다시 붙였다.      

    

2.

세희와 헤어진 지 1년이 지났을 때쯤에야 세희가 메일을 읽은 것을 확인했다. 나는 답장을 기다렸지만 답장은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의 감정과는 달리 조금은 서운했고 어딘가 모르게 화도 나는 것을 느꼈다. 메시지 정도나 답변 정도는 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혹여 내가 더 이상 바라지 않아야 할 상대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여전히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대학선배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세희를 보게 되었다. 사실 세희가 올 것 같았고 1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웃으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세희와 안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니까 다시 보자고 하면 친구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1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시간이다. 그러면 나는 1년동안 얼마나 나아져 있을까. 세희가 나의 소식이나 나에 대한 것을 마주할 때 쟤 아직도 저러고 있네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이런 원석을 내가 놓쳤다니라고 후회할까, 1년이란 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다. 쟤 아직도 저러고 있네에 더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지냈어?”

안부인사를 묻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관계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런 관계에게 묻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세희와 아무런 관계도 아닌 민철이 나 대신 여러사람들에게 근황을 물었다. 우리는 식사시간이 되어 원테이블에 거리를 두고 앉게 되었고 거긴 세희와 세희 친구들이 앉았다. 나와 세희의 관계를 아는 친구들은 우리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의 할당량만큼 배분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침묵을 지키던 나와는 달리 세희가 입을 열었을 때 우리는 모두 세희의 음성에 집중했다. 그 순간 나도 씹고 있던 입과 고기를 자르는 내 손은 자연스레 멈췄다.

“나 결혼해. 올해 9월에 식 잡았어.”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박수를 크게 쳤다. 눈치 없는 성운이란 친구는 세희가 얼마나 좋은 남자를 만났는 지 밥먹는 내내 알아내며 세희의 자랑거리를 읊게 도와주었다. 자랑거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유재석일까, 유재석처럼 능수능란하게 인터뷰를 해내는 그의 얼굴을 시원하게 치고 싶었지만 쓴 와인을 내내 삼켰다. 와인을 먹으면 먹을수록 취기를 느꼈지만, 취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결혼이라니 세희야 아직 나는 할 말이 남았는데.


3.

메일의 용량이 90%이상이 차서 삭제를 해야 했다. 받았던 메일을 삭제하다가 스팸메일에도 몇천개가 쌓여 있어서 지우려고 들어가봤더니 익숙한 이름의 메일이 보였다. 세희였다. 세희가 답장을 보낸 것을 확인 못했던 것이다. 나는 세희가 보낸 거절의 메일을 보고나서 이제야 발견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하지만 당시에 만났다고 해도 달라질게 있었을까? 만났다면 세희는 지금의 상대와 결혼을 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메일을 봤을 때 세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만나고 싶은데 메일에는 거절했을까? 차라리 처음부터 메시지를 보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철이 세희의 결혼식을 다녀왔고, 내게 맥주를 먹자는 연락을 보냈다. 얼마전부터 가던 치킨집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자주 만났다. 이제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임에도 내가 관여해야만 하는 일인것처럼 나는 세희의 일에 가까이 서 있었다. 민철은 늘 내게 객관적인 상황으로 말을 했고 나는 그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론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놈의 라라랜드만 안 봤어도.”

“라라랜드는 잘 못 없어.”

세희는 이제 사랑하는 남편과 잘 살 것이다. 아이를 낳을 진 모르겠지만 아이도 낳을 것이고 삶은 달라질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이후로 소개팅이 들어오는대로 모두 나갔다. 나가면서 이 사람이 저 사람인지 저 사람이 이 사람인지 헷갈렸고, 하루는 약속장소가 헷갈려 다른사람이랑 착각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이럴거면 쉬자 정말 쉬자라고 지쳤고, 민철 역시 그러는거 민폐야 임마라는 말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 말은 몰라도 민철의 한 마디는 늘 내게 도움을 줬기 때문에 민폐를 더 이상 끼치지 않고 지내는 것으로 마음을 잡았다.


4.

2년이 지나고나서야 나는 점차 세희에게서 벗어남을 느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지금의 여자친구인 지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세희에게 느낄 수 있었던 매력은 없었다. 다만 지현은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 

민철은 이 시간동안 이별을 경험했다. 나처럼. 그래서 나처럼 많이 그녀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민철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말해주었다. 민철이 알겠다고 말하면서 그러니까 지금 연락하면 된다는거지?라고 말했다. 나는 뭔가 궁금했다. 나와는 달리 이렇게 연락을 하면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건 몰래 하면 내가 나쁜놈이란 걸 알아서 민철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민철은 이 쓰레기 같은 새끼라면서 욕을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결국 민철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희망은 가끔, 그리고 대개, 아니면 늘 객관성을 잃는다. 우리는 복권을 사면서 1%의 기적을 바라지만 사람의 마음은 1%의 기적이 될 수 없다.  


5.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일까. 나는 계속해서 실수를 했지만, 그 실수가 후회는 되지 않는다. 나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세상 모든 것들을 보고 싶다. 그래서 그런가.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지현을 만나고 있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세희에게 무언가를 배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민철에게도 배웠던 모양이다. 민철이 흔들려하던 나에게 뭐라고 말 해줄 때는 멋있었지만, 그 역시 흔들림을 보였을 때 같은 인간이란는 것을 느꼈으니까. 

“퇴근하고 여기서 만나. 2주년 기념 저녁장소야.”

지현이 카톡을 읽었고, 뭔가 기대하는 뉘앙스의 답변이 왔다. 큰일이다. 나는 아무 것도 준비안하고 그저 저녁만 예약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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