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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May 02. 2024

그녀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면 나는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씻는 동안 나는 접시에 반찬을 종기에 담고 국을 그릇에 담는다. 밥솥에는 밥을, 그리고 나는 식탁에 앉는다. 그러면 그녀는 식탁에 와서 나의 아침식사를 먹는다. 어떤 날은 맛있다고 말하며 먹고 어떤 날은 내가 준비한 식사의 반을 남긴다. 나는 그것을 보고 질문을 했다.


-양을 절 반으로 줄일까?

-아니, 오늘은 늦어서 빨리 가야 해서 남기는 거야. 이렇게 해줘.


  그녀가 회사에 출근하면 나는 방금 전까지 그녀를 위해 준비하는 아침식사로 많은 소리가 뒤섞였던 공간이 어느새 조용해진다는 것을 느다. 그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나를 위한 표정도 어쩌면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아득하다.


  그녀가 출근을 하면 나는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에 대한 것들을 떠올렸고, 그것을 단어로 떠올렸다. 아득하다라면 매우 멀리 떨어진 상태여야 한다고 하는데, 그녀는 회사에 있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회사에 있는 그녀를 지금은 볼 수는 없지만 회사에 있는 그녀를 떠올릴 수 있다. 다만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을지, 쉬고 있을지, 하루 중 유일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은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이었다.


-오늘 점심이야.


  그녀가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하루하루 바뀌는 점심을 보고, 겹치지 않기 위해 저녁을 준비한다. 언젠가 그녀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되면서 매일 저녁을 하다가, 점심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귀찮아라고 말했지만 그날 이후로 그녀의 일과처럼 보내왔다.

  나는 밖을 나가기 위해 쓰던 글과 보던 주식창을 잠깐 멈추고 옷을 갈아입는다. 옷을 다 입고 나서 몸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오늘은 가볍게 달릴지, 그저 오래 걸을지 고민한다. 새 러닝화는 그녀가 내게 선물해준 것이다. 아껴서 신지 말고, 많이 신어. 닳으면 또 사줄게라는 말, 나는 모든 것이 닳은 신발을 떠올렸다. 그녀가 사준 신발을 신고 봄의 절정이 된 5월의 첫날의 공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내게 달리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는 하루에 한 번씩 달리기로 했고, 그것을 실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기록을 남기고, 어느새 고파진 배는 이제는 점심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트에 들어가서 재료를 하나씩 사기 시작하다가 어제는 웬일인지 그녀가 맥주를 마시지 않고 바로 침대에 들어간 것을 떠올렸다. 그녀가 들어간 후 나는 방금 전까지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다시 냉장고에 넣고, 그녀가 간단히 먹을 해 놓은 안주거리인 육포, 땅콩을 보관하였다. 나는 그녀가 없는 식탁에서 지금은 침대에서 누워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그녀와 함께 했던 지난밤들을 생각했다.


-오늘은 언제 와?

-저녁 먹을 수 있어. 정시 퇴근.

-응


   그녀가 좋아하는 닭볶음탕의 재료를 하나씩 사고 마트에서 나왔다. 봉투에 들어 있는 재료들은 곧 퇴근할 그녀를 위한 음식이 될 것이므로, 나는 그것을 생각했다. 처음 닭볶음탕을 했을 때, 그녀는 이런 것도 할 줄 아냐고 말하며 잘 먹었다. 나는 그날 이후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며 자주와 가끔 그리고 종종 닭볶음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오기 전 나는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킨다. 완성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수는 있지만, 그날 했던 것들을 썼다. 이를테면 오늘은 해인이 아침식사를 모두 먹었다. 나도 아침식사를 하고 글을 썼고, 달리기를 했다. 오늘 해인이 보낸 점심메뉴는 돈가스나 또는 우동, 감자탕이야 이런 것들을.  

떠올렸던 것들, 느꼈던 것들을 써볼래? 모호하다는 건 어쩌면 어려운 해석이 될 수 있지만 매력이 있어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 이후로 최대한 그녀가 말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하고 쓴 글들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점차 그녀는 내 글을 마음에 들어 했고, 나는 그런 반응에 더 괜찮은 결과를 보일 수 있다는 나 자신이 좋았다.


-참, 어제 쓴 글이랑 오늘 쓴 글은 이어지는 거라 했지?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응 맞아.


   저녁시간이 되면 나는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내가 쓴 글을 읽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그녀가 침대로 들어가면 나는 테이블을 정리한다. 정리를 하는 동안, 그녀가 침대에 들어오라고 말한다. 나는 잠시만 있어. 곧 갈게라고 말한다. 그녀와 나는 침대에서 우리의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내가 쓰면 좋을 글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2년 전인가 갔던 강릉 바다는? 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말하면 가끔씩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는 글쎄? 그런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런 것들을.


-사랑해. 내일은 오래된 사랑에 대해서 써볼래?

-오래된 사랑은 어려울 것 같지만 노력해 볼게.

-잘 자, 오늘도.


   그녀는 나에게 가벼운 키스를 한다. 그리고 그때는 내 스위치를 누른다. 스위치를 누르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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