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의미 "무드 인디고"
인생 짧은데, 순간은 더 짧은데
끊임없이 인생을 시험받고 있다.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은 공장 같은 풍경 속,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이란 상품을 판매한다.
그들은 어떤 사명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상품을 판매할 수 있을까.
행복을 만들면서도 불행하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은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의미일 수도 있는 일일 테니 행복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만약 시장 가격이 정해진다면 행복을 어떤 형태가 됐던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따라, 제도에 따라, 사회가 수용하는 요구에 따라 내놓는 잘 포장된 상품으로 판매될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은 상대적이라 늘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그들은 행복을 의심해보기도 하고,
때론 너의 행복을 나의 불행이 뺏어 갈까 미안해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바라는 것,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틀 안에서 그들이 쌓아온 데이터에 의해
이미 사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억압된 자유표현과 적당한 규칙으로 적당한 보통의 행복을 즐기며 살아가면
적어도 본인도 편하고, 그리 불편을 주지 않으니 타인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사회적 안전망, 제도, 정해진 데이터
이런 일상들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행복을 찾으려 하고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무드 인디고는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분명히 하고자 한 메시지를 보냈다.
행복이라 여겼던 짧은 순간에는 즐거운 기억만이 존재한다.
너라서 즐거웠고 우리는 정말 사랑했으며,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과거가 있다고 해도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 지나간 과거의 행복 때문에 지금 내가 불행한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지 생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잠시 접어두면 의미와 무의미의 순간을 생각할 수 있다.
의미는 어떤 형태로 구분되는가.
앞 선 행복의 고민과 또 다른 느낌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시험받는다.
나 라는 존재는 어떤 것으로 이뤄진 집합체인가
과거의 기억? 현재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 아니면 너와 나의 관계?
어쩌면 더 복잡하고 더 많은 구성요소가 있을 텐데
하나라도 제 기능을 못한다면 그때도 나는 나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불행을 덮을 수 있는 과거의 행복으로 마지막을 맺는다.
아주 좋은 영화 하나를 보았거나 책을 읽었을 때
공감했던 대사 한마디, 글 한 줄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대사 한마디가 좋다며 공감한다고 세상이 변하지도 않고 내가 변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소비하고, 꿈꾸면서도 불안을 느낀다.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부터 그런 힘이 생겨날까.
늘 나 라는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일까.
끊임없이 인생을 시험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나 가 아니게 될 때가 있다면 나 가 되지 않은 순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가 나 라는 존재가 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일까
의자는 앉을 수 있어야 의자다. 그렇지 않다면 의자라고 될 수 없다. 너는 나를 판단할 때 소중한 사람이 될지, 가치 없는 사람이 될지에 대한 요소들도 세상에는 잔인한 규칙이 있다.
내가 가진 금고 안의 돈의 양, 사랑하는 사람의 병으로 가까워지는 죽음, 영원히 있을 것 같다가도 떠나가는 사람들, 또 가장 가까운 사람의 배신, 의미 없는 철학과 가치들까지.
전부 인생을 시험하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아주 어쩌면 끊임없이 우리는 인생을 시험을 받고 있기에,
우리는 늘 그랬듯이, 불안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발견하고, 나와 너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밟아갈 것이다.
화려한 색채가 주는 행복이 주는 착각 속에도 불안이 존재한다.
색채가 없는 삶은 필요 이하로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 마지막 의미가 되는 순간은 과연
어떤 순간이 가장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셸 공드리가 공들인 영화
때론 환상적이고, 존재에 대한 의심이 들게 하기도 하고,
사랑을 시작할 때 느끼는 떨림, 일상의 풍경에서 영화 같은 꿈, 아름다운 노래들로 영화 한 편 잘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