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어느 대한민국 <벌새>

존재가 부재할 때가 느껴질 때 우리는 성장한다.

by 성운

94년 어느 대한민국 <영화, 벌새>

-존재가 부재할 때가 느껴질 때 우리는 성장한다-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분주한 움직임, 영화 벌새는 끊임없이 행복을 찾는 발걸음으로 가득한 영화다. 행복은 불행할 때, 더 빛나고 성숙은 늘 아픔을 동반한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다들 경험해봤을 테니.

1994년, 작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들에게 오늘의 어른인 우리는 과거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직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어느 빌라에 처음으로 이사를 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주택이 아닌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입구 현관을 열면 나오는 거실, 처음으로 생긴 개인 방, 그 날 찍었던 사진에 동생과 나는 바나나를 들고 있었다. 동생은 바나나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었고 나는 내 키보다 높은 창문을 열고 있었다. 곧 나는 입학을 했고 수많은 나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 친구들의 부모님, 그 외에 학교에 다니는 어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늘 가지고 싶게 만드는 캐릭터 운동화를 신고 온 아이들과 머리를 한 껏 꾸민 아이들의 모습, 예쁜 옷을 입은 여자아이, 쉬는 시간이 되면 약속된 놀이로 노는 아이들과 캐릭터 그림책을 가져온 아이는 늘 인기가 있었다.

그림책 하나로도 상상력으로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던 나이였으니.


94년에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겐 친구들과의 놀이와 학교를 마치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옆집엔 1살 위 형이 살았는데 늘 다른 학교였다는 게 아쉬웠다. 같은 학교였다면 학교에서도 같이 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함께 놀면서도 왜 같은 빌라에 살면서 다른 학교를 다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형은 내가 5학년 때 이사를 가며 우리는 헤어졌다. 형에 대한 추억은 우리 집에 없는 게임기와 드래곤볼, 그리고 미니카를 함께 놀았었다. 우리 집보다 더 재밌고 다양한 게임을 가졌고, 거의 전 권을 모은 드래곤볼, 나는 한대도 완성하지 못하는 미니카를 조립해서 모아둔 것 때문에 나는 늘 형을 좋아했고, 그런 형은 나와 함께 놀아주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형과 놀 생각 때문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선생님은 학년이 바뀌면서 계속해서 무서워졌다. 뭔진 모르겠지만 그들의 약속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약속의 이유로 정당한 구타를 했다. 그런 폭력이 일상이었다. 언젠가 그때의 선생님들의 가학적인 폭력을 취재하는 방송이 있길 바란다. 그 때 그들이 했었던 대부분의 구타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방송이 나오거나, 이런 비슷한 글을 본다면 제발 부끄러워 하셨으면 좋겠다.


행복하기 위해 불행인지 나조차도 모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타협을 한다. 그래서 물렁했던 것들이 딱딱하게 견고해지며 고정이 된다. 타협을 할수록 빠른 속도로 기존의 세계에 편입되어 녹아들고, 어느새 그것이 정답이 된다. 그러면 하나의 세계가 구축이 되고 단단한 성벽을 쌓는다. 때로는 어떤 무기들로 인해 성벽이 파괴가 되는데 그 무기들은 깨달음, 상처, 위로, 배신, 사랑, 두려움, 부재, 슬픔이다. 또한 성벽은 견고해서 파괴가 된 이후에도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간은 늘 성숙을 의미하지 않지만,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했던 것들을 부재로 더 실감하고,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이 새로움은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채워진다. 새로운 중학교 친구가 마치 처음부터 있었다는 듯, 처음부터 5학년까지 놀았던 형이 마치 없었듯. 그땐 어른이 되는 것을 바랬으면서,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할 나이였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 엄마의 공격에 당하는 아빠의 모습과 며칠 후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TV를 보며 웃는 모습을 언젠가 은희는 부모를 이해할지도 모른다.

공부를 못하는 은희에게 관심 없어 보이는 아빠가 병원에서 그녀에게 눈물을 보이며 약한 모습을 보일 때의 모습과 성수대교 사고 후 아무 일이 없는 가족의 식사시간에 힘 없이 우는 오빠의 모습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관계인 가족이지만, 슬픔의 감정을 공유할 정도로 내적인 관계가 형성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줄 몰랐다가 소중함을 깨닫는 것과 소중한 것을 잃을 때의 두려움은 나이와 상관 없이 각자의 마음에 크기에 달려 있는 듯하다.


가끔씩 아니면 오랫동안 소중한 것을 소중한지 모르고 산다. 좋은 친구, 좋은 어른, 좋은 관계 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영원히 있을 거라는 믿음.


이 믿음이 깨지는 순간, 우린 혼란스럽고 방황한다.


나도 행복한 순간이 올까요 라는 작은 날개짓.

영원히 행복을 향해 찾는 여정.

그 분주한 발걸음이 만드는 영화 벌새는 94년 대한민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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