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이 가장 멋진 순간이지
일상엔 켜켜이 쌓아 온 어떤 흔적들이 가만히 있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며 마음을 흔드는 시간이 찾아온다. 내가 선택했던 일들과 선택하지 않았던 일들이 충돌한다. 시간은 끊임 없이 흐르고, 선택을 했던 순간에는 다른 선택을 붙잡을 수 없어도 수 십가지의 길을 바라본다. 마치 선택한 것 처럼.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며, 지켜볼 때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작은 조약돌을 던져본다. 그 결과로 생기는 어떤 일들에 상처 받고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일상을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커지는 우연들이 선택을 함으로써 발생한다. 대부분 시간이라는 공간과 한정된 자원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었겠지만 결과가 예상을 비틀어버릴 때, 시간은 늘 잔인하게 반대편에서 바라본다. 우연으로 생긴 일들은 내가 마침내 선택했던 것들의 예상이 빗나간 길이었다. 그 때 하지 않았던 것을 했다거나, 아니면 해왔던 것들을 조금 다르게 했을 때 생기는 어떤 에너지. 나는 그걸 실수라고 말하지 않고 에너지라고 하고 싶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하며 있다와 없다가 공존하는 순간을 깨달을 때 한 단계 성장하는 힘이 된다.
나는 이런 에너지의 긍정적인 면을 믿는 것 같다. 이 힘은 어떤 가치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의 힘이며, 창조의 힘이 된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 어떻게 생각과 생각을 통해 내 부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우연한 계기로 빌리엘리어트를 봤다. 영화는 왜 2시간인데, 일생을 깊이 흔들어버리는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최초의 영화였고, 나는 아직도 이 영화를 안 봤다는 사람이 있다면 무릎을 꿇고서라도 속는셈치고 한 번만 봐달라고 하고 싶다.
빌리엘리어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탄광촌이 저물던 시대, 영국의 작은 도시에서는 광부들의 파업과, 경찰들의 대치상황으로 암울한 당시를 조명한다. 새로운 것들이 세상 밖을 나올 때, 낡고 힘이 없는 것들은 모두 세상에 묻혀야 했다. 낡은 것을 고수하지 않으면 당장의 생계가 이뤄지지 않는 사람들과,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몽상가들의 대립이 언제나 역사 속, 인간의 이야기에 있었다.
빌리엘리어트는 아주 작은 힘 없는 소년으로,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권투장을 간다. 권투장에는 발레교습소가 함께 운영된다. 권투는 남자들의 스포츠, 발레는 여자들의 스포츠로 극명하게 나뉘던 시대, 빌리엘리어트는 우연히 권투글러브를 끼고 발레를 하게 되고, 윌킨슨 선생님은 빌리엘리어트의 재능을 본다. 이 후 재능을 보이지 않는 권투는 뒤로 하고 몰래 발레 연습과 윌킨슨과의 대화를 통해 더 연습에 매진, 그리고 윌킨슨은 더 멀리 빌리가 더 큰 무대로 나아갈 모습을 그려간다.
아버지는 당연히 빌리의 발레를 반대한다. 남자가 발레를 하는 모습을 상상도 못했으며, 통용될 수 없는 사고를 인정해주기에는 그들은 서로를 많이 알지 못했고 무관심 했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바꾼건 화이트크리스마스였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빌리의 작은 날개짓.
때론 그 작은 날개짓이 큰 기적을 만들어버린다.
어떤 설명으로 그 씬과 감정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벅차서 말이 안나올정도의 감동이 그 짧은 몇 분의 내용에 모두 담겨있었다.
이 후의 내용은 명대사와 명장면들로 가득하다. 도전을 위해서 꿈 꿨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누군가의 희생, 사랑, 그리고 그 속에서 끝내 헤어져야 했던 우정, 사실 내가 너 키워준거야라고 으시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스승의 모습, 성장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빌리의 모습들은 영화를 다시 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모든 걸 쏟아야 했던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옳다고 믿고 걸어온 일상이 있었다. 그 일상은 하루에도 수 십번씩 흔들렸고, 작은 균열이 만드는 우연들로 인해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고 그 안에 있던 작은 새의 날개짓을 창조했다.
그런데 뭔가 한 쪽에선 마냥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어른의 모습은 늘 부재로 남아 있었다. 한 번도 좋은 어른을 본 적이 없다는 부재는 미디어에 창조된 어느 이상형으로 부재를 증명해주었다. 나는 좋은 어른의 모습을 떠올릴때면 <빌리엘리어트>의 윌킨슨과 <죽은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그리고 <벌새>의 영지선생님을 떠올린다.
재능을 발견하고, 기다려주며 가장 쿨 한 이별을 선택한 윌킨슨과 학생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마음 속 깊은 가려움을 긁어주었던 존 키팅, 어쩌면 아주 쉽게 마음을 다칠 수 있는 나이인 은희에게 싸우는 법을 알려주었던 영지선생님에게 애정을 느낀다. 이 애정의 무게는 때론 내 인생을 거는 어마어마한 무게로 나를 지탱해주었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좋은 어른의 모습을 고민하게 해주는 창조된 이상형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다시 부재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때, 한 번 더 좋은 사람의 부재를 떠올려본다. 어떤 모습이, 어떤 생각들이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
그런 고민이 들 때마다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