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달려야 했던 이유 <영화, 1917>

by 성운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병사는 명령에 따라야 하고, 지휘관은 부대가 받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지휘관으로부터 임무를 하달받은 병사는 전략의 일부가 된다.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전술이 성공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최소한 바로 옆 전우를 지켜야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를 성공해야 한다. 국가의 애국심은 전쟁을 일으켰다. 누군가를 지켜야 했고 성공적인 전술을 위한 전략의 모든 것이 전쟁에 포함되었다. 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상대를 우선 죽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인류가 저지른 끔찍한 역사, 세계1차대전은 대규모 살인무기가 거침없이 사람을 향했던 분명, 명분 없는 비극의 시간이었다. 원숭이와 비슷했던 두 손을 사용했던 인간은 돌덩이, 창등으로 부족 간의 전쟁을 통해, 세력을 키웠다. 시간이 흘러 그 원숭이는 고도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한 비행기, 대포, 총 등을 활용한 전쟁을 한다. 거기다 지능화된 트랩, 철조망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너무나 쉽게 사람이 죽었고, 망가져 갔다. 참혹했던 현실은 희망을 잃어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전쟁을 끊을 수 없었다. 전쟁을 끝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항복을 하면 그동안의 인류적 범죄를 다 뒤집어써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피해였다. 서로의 경계선을 두고 총과 대포, 미사일을 대치하면서 의미 없는 죽음과 폭음이 비명을 묻혔을 것이다. 희망으로 상징될 것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 언젠가 생존자의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생존자들은 신체적인 피해도 있었지만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정신적인 이상도 심각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 전쟁의 생존자들이 그때를 회고하며 증언한다. 전쟁 생존자의 가장 큰 문제는 트라우마였다. 그들은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이 보여주는 후유증은 전쟁의 참혹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영화의 시작은 영국과 독일이 대치하던 중 독일이 전략상 후퇴한 것을 후퇴로 간주한다. 독일의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던 것은 영국이 후퇴를 하는 독일을 향해 총공격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곧 독일의 후퇴가 전략적 속임수라고 알게 되었다. 영국군도 곧바로 작전 수정에 돌입한다. 통신망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영국군은 최전선에서 공격을 준비하는 부대의 공격을 중지시키기 위해 두 병사에게 공격 중지 서신을 맡긴다.


지금껏 봐왔던 전쟁 영화에선 싸움의 유, 불리함을 서로의 수장들이 전략을 바탕으로 전투를 승리하는 장면을 봤었다. 1700만의 관객이 보았던 영화 <명량>이 그랬다. 역사영화를 보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첫 번째로는 내가 모르는 사람과 시대를 보기 위함이다. 그런 영화에는 <암살>, <밀정>, <박열>이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더라도 어떻게 작품이 그 인물을 그려냈을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보는 영화가 있었다. <항거:유관순 이야기>, <사도>, <천문>등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역사영화는 역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상당히 흥미 있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랏말싸미>, <자전거왕 엄복동>을 보면 반드시, 꼭 그렇다고 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두 병사는 전시의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적이 있을지도 모를 적군 베이스캠프로 달린다. 이때부터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인 롱테이크 같아 보이는 영상 촬영기법을 본격적으로 보며 둘을 따라가는 느낌으로 보게 된다.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생각났다. 낙하산을 타고 내리면 1인칭의 느낌으로 캐릭터를 조종하고 빈 집에 들어가서 총과 장비를 줍는다. 그리고 적과 대치하면 내가 죽기 전에 상대를 쏴서 죽여야 한다. 그렇게 최후까지 남게 되면 그 게임은 승리한다. 다만 현실은 적군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적군이 나오면 내가 죽거나 상대방을 죽이게 되는 상황을 대치한다. 좀 다르다.


임무를 받은 병사의 이름은 스코필트, 블레이크이며 둘은 서로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블레이크는 어느 정도의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면서 휴머니스트의 형태를 지닌다. 반면 스코필트는 전쟁의 무용성을 느꼈다. 그건 스코필트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군인에게 훈장이란 그저 와인이랑 바꿔먹을 정도의 가치였던 것이다. 그에게 전쟁이 끝나는 것일까라는 허무를 느끼는 것 같은 허무함이 맴돌았다. 다만 블레이크는 전쟁의 마무리를 강렬히 원했던 것 같다. 함께 전쟁 속에 있는 형도 있으며, 돌아가야 하는 어머니도 있다. 나라면 아마 스코필트와 비슷했을 것 같다. 나중에 돌아갈 곳이 있고 지금 훈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 속에서 생과 사를 계속 봐왔다면 그런 훈장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 것 같다. 거기다 지금 당장 와인이 손에 들어온다면 나 또한 훈장과 와인을 바꿀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역사의 한 장면을 담은 영화 1917에도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여자와 아기, 그리고 체리나무였다. 세 존재는 이런 의미 없는 전쟁 속에서도 다시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상징이었다. 유튜브 조승연이 다룬 1917에서 왜 세계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은데 세계1차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없었나라고 하면서, 세계1차세계대전엔 어떤 특정 인물도, 어떤 교훈도 찾을 수 없는 절망의 전쟁이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마치는 영화였다면 1917이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1917은 그런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여자, 아기, 체리나무라는 희망을 심어 놓을 수 있는 영화였다. 스코필트가 잠시 의식을 잃어갈 때 블레이크가 말해줬던 체리나무잎이 아름답게 떨어졌다. 이런 게 영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스코필트의 달리기는 많은 것을 의미했다. 영국군은 독일군을 향해 진격했고 스코필트는 그런 영국군의 공격을 중지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방향은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이기기 위해, 지키기 위해.

그동안 봐왔던 구도와 시점과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이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 두 다리는 그동안의 죽음과, 전투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달렸다. 그 짧은 장면에서 1917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나는 나름대로 해석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달리기를 하기 전까지 스코필트에겐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독일군이 함정으로 만든 베이스캠프와 블레이크의 죽음, 다른 부대의 도움을 받았고, 누군가를 죽였고 체리나무와 폭포 그리고 엉망이 된 동네까지, 아기와 여자에게 건네었던 우유와 식량들도 결국 블레이크의 죽음이 그런 달리기를 만들었다.


임무는 성공하여, 영국군은 공격을 중지한다. 성공한 것이다. 세계1차대전은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다. 그리고 인간은 1939년 다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며 세계2차대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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