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나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나이

'나는 누구인가' 가장 어려운 자문(自問)

by 이니슨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글도 다 떼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와 수학을 공부했고, 그 이후로도 국영수는 기본, 각종 예체능까지 섭렵하느라 나에 대해 생각할 틈은 없었을 것이다. 부모는 교육계의 변하는 양상에 발 빠르게 반응해 교육에 열을 올렸을 것이고, 자식 된 노릇으로 부모의 지원에 감사하며 그 뜻을 따랐을 것이다. 부모가 정해 놓은 길을 벗어나면 질책이 이어져 자존감은 바닥을 쳤을 것이고.

설상가상 학교에서는 교우들과 트러블까지 생겨 안팎으로 마음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시간을 견뎌냈을지도 모르겠다.

book-gf395ea0bb_1920.jpg 이십 대,나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나이 ⓒ픽사베이


내 학창 시절 역시 그랬다. 내게 중요한 것은 성적이었다. 내 성적표는 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기준이었다. 내가 문제아가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내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학생이니까 딴생각 없이 공부를 해야 했고, 학생을 위한 부모의 지원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렇다고 결과가 잘 나오지도 않았지만.


의식이 생긴 이후로 처음 갖게 된 꿈은 작사가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노랫말이 내 마음을 반영하는 것 같았고, 노랫말을 통해 내가 만나지 못한 세상을 들을 수 있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려는 친구, 도서관에 앉아서 자고 있는 친구 등에게 노랫말을 빗대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또 어떤 기관에서 가사 응모전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일도 있었다.


때문에 대학은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선택했고, 졸업 후에는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했다. 나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입시를 준비할 때 적어도 부모를 설득하려는 노력 정도는 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의지 없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따르기만 했던 나는 스스로 꼭두각시이길 자처한 꼴이었다.


비단 학창 시절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는 데 몹시도 게을렀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다. ‘좋은 게 좋은 거’, ‘좋다고 하는 게 좋은 거’ 등의 안일한 마음으로 40년을 살아왔고 이제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고민한다. 이제 와 생각하려니 더 많은 제약이 따르고, 그래서 생각은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다. 왜 진작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forest-ge2b1528c4_1920.jpg 이십 대,나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나이 ⓒ픽사베이


한동안 GOD의 '길'을 들으며 많이 울었더랬다.
그 노랫말처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매일을 그냥 걸었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또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한참을 걷다가 내가 대체 왜 이 길에 서 있는지, 이게 정말 나의 길인지, 이 길의 끝까지 가면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방황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싶은데 내딛는 걸음은 누구에게 조종이라도 당하는 듯 힘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꿈꿀까. 그건 누구를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나는 진정으로 웃을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알고 싶어도 답을 내릴 수 없어 답답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런 상태지만 내가 원하는 길을 찾겠다는 의지를 갖고 나를 들여다 보고 있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기에 따라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는 범위는 달라진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를 찾고 원하는 방향을 설정해 나아가는 중에도 여러 번 길을 벗어나 헤맬 수 있다. 어릴수록 더 유연하게 생각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고, 어릴수록 더 넓고 자유로운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괜찮다. 늦어도 괜찮다. 어릴수록 얕고 길게 가는 것 대신 깊고 길게 갈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한 번뿐인 인생, 좀 더 자주적으로 살고 싶다면 하루라도 더 어린 오늘 나를 깊이 들여다보자. 흔히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 삼 심대, 사십 대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심도 있게 생각했다면 나를 믿고 실행하자. 그리고 그 길을 막는 이가 있다면 당당히 말하자.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되고 싶고,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길 원한다고. 그러니 지켜봐 달라고.


스스로 길을 정하고 나아갈 때 에너지는 넘치고 속도는 빨라진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 집중하라. 그리고 당당히 나아가라. 그러면 그 길에 어떤 시련이 있어도 견뎌낼 힘이 생길 것이다. 내가 나를 기준으로 선택한 길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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