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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Oct 30. 2022

꿈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시 돌아간다면 열 일곱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냐고. 나는 답했다. 다시 열일곱이 되고 싶다고.

내게 원하는 때로 돌아갈 수 행운이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열일곱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꿈을 꿀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최근 들어 부러운 사람이 있는데, 바로 어릴 때부터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대체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꿈이란 게 있을 수 있었을까. 또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끈기 있게 그것들을 위해 노력하며 나아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인기리에 종영된 한 드라마의 영향이었다.


극 중 여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펜싱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수많은 좌절과 슬럼프와 멸시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다. 펜싱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누가 뭐라든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 계단 한 계단 차곡차곡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대표를 넘어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 뿐만 아니다. 꿈이 있는 그에겐 특유의 생기가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그 에너지가 전해진다.

비록 드라마였지만 넘어지면 일어서고 쓰러지면 또 일어서는 그의 모습을 보는데 불현듯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그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극 중 주인공이 학창 시절 꿈을 좇으며 부단히 노력하고 이뤄낸 것과 비교하면 내 학창 시절은 초라하기만 했다.


그래서 다시 열일곱이 된다면 꿈을 꾸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겐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꿈을 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분기마다 이어지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 취업을 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 늦지 않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바라보는 지향점이었다. 세상이 얘기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게 나의 꿈이었을까. 아니다. 내겐 꿈이 없었다. 그랬기에 꿈을 이루겠다는 각오도 없었고 꿈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다짐도 없었다. 알맹이 없는 땅콩처럼 텅텅 비어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기는 할까. 안타깝게도 그런 기회는 없다. 영화 속 이야기다. 헛된 꿈일 뿐이다. 현실을 자각하고 지금 할 수 있는 목표를 재설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은 평생 주어지지 않는다. 떠난 버스가 다시 돌아오지 않듯. 그렇다고 지금이 꿈을 꿀 수 없는 나이인가. 마흔, 이젠 꿈보다 목표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내 목표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로 서는 것이다.


10여 년을 아이 돌보는 데 나를 바쳤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언제고 내 곁에 머물지 않는다. 스스로 클 것이고 자신의 앞날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부모로서 그 밑받침을 마련해줬다면  이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만이 내 역할이다. 나는 이제 다시 나로 돌아갈 것이다. 나이가 든 후에야 소중함을 깨달은 여행을 자유로이 다닐 것이고, 어릴 적부터 로망이 있던 파리의 한 옥탑방에서 한 달 살기를 할 것이다. 그림과 와인을 배울 것이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 꿈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꼭 꿈이 아니어도 삶의 목표가 있는가. 세상이 정해놓은 것을 따르기 전에 나만의 꿈과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달리길 바란다. 당신의 생기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떠난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곧 다음 버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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