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명의 사람이 화장실에 모여 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A의 험담을 한다. 그 뒤로 화장실 한 켠의 문이 열리더니 뒷담화의 주인공 A가 등장한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얼굴이 벌게져 화장실 밖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자주 봤던 장면이다. 대체로 A는 착하고 뒷담화하는 사람들은 비열하게 그려진다. 보면서는 뒷담화 무리에게 손가락질을 했더랬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잘못을 한 적이 없을까.
알게 모르게 숨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잘못을 저지르는 비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스물셋 대학시절. 휴학을 하고 복학한 동기가 있었는데 몰라보게 예뻐진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늘씬해진 데다 얼굴도 예뻐져 모두가 놀라워했고, 또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심심찮게 소문이 돌았다. 그가 한약을 먹고 살을 뺏다는 것이다. 더욱이 성형을 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사실 무엇을 해서 살을 뺏든 중요하지 않다. 성형을 하면 또 어떤가. 그게 흉은 아니지 않나.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그(A)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A가 약 먹었대’, ‘A 수술했다며?’. 그리고 정말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바로 뒤의 칸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A.
뒷담화의 진짜 얼굴은 '열등감'이다 ⓒ픽사베이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면 A가 부럽고 셈이 나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유독 쌀쌀맞고 괴롭히는 것과 같은 심리일까.
그때의 민망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A는 우리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부글부글 끓어 넘치려는 속을 쓸어 담고 있었을 게 뻔하다. 그 후 한동안 A 보기가 민망해 피해 다녔던 기억이 난다. 더 부끄러운 것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도 명백하게 현장에서 적발됐는데도 말이다. 피해자가 항의를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분 나쁜 것을 꼭 입 밖으로 표현해야만 할까. 또 나라면 내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 무리에서 혼자 당당히 맞설 수 있었을까. 지금도 종종 그 친구가 떠오른다. 다시 만나면 그때의 일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데 연락 끊긴 지가 오래됐다는 케케묵은 변명을 덧붙여본다.
<게으른 사람들의 심리학>의 저자에 따르면 험담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 험담을 한다. 또, 험담을 하는 사람들과 공통적인 생각을 하면서 서로 이해 받고 공감 받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나 뒷담화는 일상에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카타르시스 경험들 중 하나라고 그는 설명한다. 나의 경우 공감대 형성과 카타르시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심리가 어떻든 누군가의 험담을 하려거든 먼저 나에게 남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인간관계에서 남을 깎아 내리는 것만큼 한심해 보이는 것도 없다. 타인의 흉을 보는 것은 그에게 열등감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전에 나 스스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 열중해야 할 것이다. 그가 시기 질투 대신 동기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의 몸매가 부러우면 식단을 조절하거나 운동을 하면 되고, 그의 성적이 부러우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 그의 직장이 부러우면 열심히 성과를 올리거나 능력을 키워 이직을 하면 되고! 그를 닮으려고 노력하기 전에 그와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에 만족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뒷담화의 진짜 얼굴은 '열등감'이다 ⓒ픽사베이
앞서 언급한 심리학 도서의 저자는 뒷담화는 단기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음험한 사람’, ‘진실되지 않은 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 ‘기만적인 사람’ 등의 이미지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뒷담화 전력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흠험하고 기만적인 사람이 될텐가! 진실되지 않아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될텐가! 만약 그렇다면 내가 했던 험담이 몇 곱절의 화살이 돼 내게 날아올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자. 잘못을 뉘우치고 앞날의 다짐을 하자.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지 말자.
흔히 ‘뒷담화’를 순화해 ‘남 걱정’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남의 걱정을 왜 내가 하는가. 걱정은 그에게 애정이 있을 때에나 성립되는 단어다. 그것은 단순히 내 열등감의 표현일 뿐이다. 뒷담화는 걱정이 아니라 폭력이며, 뒷담화의 기록이 곧 나를 평가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