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판단하지 말자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4~5살 때 뛰다가 쫓아온 강아지에 다리를 물린 적이 있어서 이후로 아주 작은 강아지라도 나를 향해 으르렁대거나 짖으면 근처에도 가지 못 한다. 멀리서 어슬렁거리는 강아지가 보이면 뒷걸음질을 쳐 다른 길로 발을 돌릴 정도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출근길에 기겁을 한 일이 있었다. 회사로 뛰어들어가려는데 출입구 앞에 커다란 개 두 마리가 터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작은 개도 무서운데 덩치가 성인 허리 이상일 것으로 보이는 대형견, 그것도 두 마리나. 심장이 벌렁거리다 못해 쪼그라들 지경이었다. 다행히 개들이 짖거나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회사에 들어갈 수가 없어 평소 그 개들을 예뻐하는 실장님의 도움으로 겨우 출근할 수 있었다.
개들은 회사의 옆 창고 건물에서 키우는 아이들이다. 매일 개들의 간식을 챙겨주시는 실장님을 따라 구경(?)을 간 적이 있었는데 한 마리는 흔히 '누렁이'라고 부르는 외모이고, 한 마리는 검은색 털과 흰 털이 섞여서 얼핏 보면 늑대 같은 무시무시한 외모다. 나로서는 절대 다가설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무섭게 생긴 늑대개가 실장님 앞에서 폴짝폴짝 뛰거나 벌러덩 눕는 등 애교를 부리는 것이었다. 실장님은 "생긴 건 좀 그런데 되게 순해. 너무 귀여워."라며 엄청 예뻐하신다.
이후에도 몇 번 관찰한 적이 있는데 정말 생긴 것과 달리 순하고 애교가 가득해 보이는 개였다. 외모로만 평가한 게 조금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가까이 갈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사람을 생긴 걸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검색을 해보니 외모가 아닌 내면의 가치를 존중하고, 섣부른 선입견을 경계하라는 뜻이라고 나와 있다.
외모란 게 비단 생김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외적 조건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학벌, 연봉, 사는 집, 타는 차, 입는 옷 등 외적으로 보이는 여러 조건이 외모에 해당된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 색안경을 끼고 있다가 그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색안경을 벗는 경험을 무수히 많이 했다.
오지랖이 있다고 생각했던 A는 그저 사람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내면에는 타인을 경계하지 않고 챙기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던 B는 자신의 아이와 아이 친구가 급이 다르다는 막말로 모두의 외면을 받았다.
잘 빚어 놓은 듯 반듯하고 예쁘게 생긴 C는 조금 친해지니 험한 말을 습관처럼 내뱉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모두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 생긴 잘못들이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은 스페인의 거장 가우디를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다.
가우디는 노면전차에 치여 치명상을 입었다. 전차 운전사는 가우디의 차림을 보고 노숙자라 생각해 그를 병원이 아닌 길가에 끌어다 놓고 가버렸다고 한다. 사고를 목격한 행인이 가우디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택시를 잡는데 택시 기사 역시 가우디의 차림새를 보고 3번이나 승차거부를 했다.
겨우 병원에 도착해서는 의사가 그를 노숙자로 여겨 기본적인 치료만 한 채 방치했다. 가우디와 친분이 있던 신부가 병원으로 찾아가 그가 누구인지 얘기하며 치료를 재촉했지만 가우디는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 것을 보여줘라."며 치료를 거부한 채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다.
유초등생들 사이에서조차 "너네 차 뭐야?", "너네 집 몇 평이야?" 묻는 시대다.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좋은 학교, 훌륭한 학벌, 비싼 차, 넓은 집은 그 사람이 가진 것 중 하나지만 그게 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지난 과오를 반성하며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긴다.
얼마 전 무엇 때문인지 늑대개가 자유롭게 근처를 배회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 회사로 차가 들어올 때마다 반갑다는 듯 달려왔다. 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다른 직원이 나와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퇴근길, 갑작스레 늑대개를 마주하고 말았다. 같이 퇴근하던 선배가 급히 개를 몰고 가려고 했지만 개는 호기심인지 나와 친해지고 싶은 건지 내게로 방향을 틀었다. 온몸이 동상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개는 내 다리에 몇 번 몸을 비비더니 그대로 가버렸다. 그리곤 선배 옆에서 또 폴짝폴짝 뛰다가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다.
'휴, 죽는 줄 알았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순한 녀석이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자'
한낱 미물에게서도 삶의 태도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