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도 없으면 어쩌나요
내가 아이를 가질지 말지에 대해 고민할 때면 항상 단단한 기둥처럼 내 사고를 가로막는 무논리의 감정이 하나 있다. 이타심인지 이기심인지 모를 그 감정. 그 감정이 불쑥 솟아 나올 때면 늘 처음 맞닥트리는 것 마냥 혼란스럽고 조바심이 난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죄책감마저 든다.
손주 없는 인생을 선택당하는 부모님
그 감정의 정체는 바로 ‘효도’의 일종이다. 평소 내가 부모님을 의식하고 염려하는 것에 비하여 실제 효도를 한 일은 별로 없다. 여담이지만, 이것이 내가 미혼 친구들에게 절대로 불효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이유다. 불효자는 늘 마음 한켠에 효도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품고 있어서 일상 속에서도 별별 효도 건수를 찾아다닌다. 많은 경우 그것은 부모님 본인에게 와 닿지도 않을뿐더러 동시에 배우자에게 부담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효자인 나는 오늘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인 자녀문제에까지 부모님의 처지를 개입시킨다.
“언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인생인데 엄마 아빠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거잖아?”
나보다 더 확고하게 아이 없는 삶을 그리고 있는 동생이 늘 하는 말이다. 결혼할 때부터 아이를 낳지 않기로 굳건하게 협약한 동생네 커플이 나에게는 더 골칫거리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남자에게 관심 없다고 공언하던 동생이 연애한 지 1년 만에 웨딩마치를 올렸을 때 내심 이런 생각도 했었다.
‘결혼도 결국 했으니 어쩌면 아이도 낳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 동생의 신념은 확고해 보인다. 거기에 더해 작년에 파리에 머물면서 확인한 결과 제부까지 같은 생각인 것을 알고 나니 내 희망은 더 요원해졌다.
그렇다. 나는 동생에게 ‘손주를 낳아 드리는 효도’를 미루고 싶었다. 우리 집안에 내 자식은 아니더라도 아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할 것 같았다. 겉으로는 손주에 대한 바람이 없다고 말씀하시던 부모님도 어느 순간 정말로 당신네들에게 손주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약간의 흔들림을 내비쳤고, 나는 귀신같이 그 심경의 변화를 읽었다. 큰 딸은 결혼 7년 차에 아직 아이가 없고, 온 식구가 붙잡는데도 결국 프랑스로 삶의 터전을 옮겼던 이력이 있는 강단 있는 둘째 딸도 아이 없는 삶을 선언했으니 아무 생각 없던 사람일지라도 그야말로 현타가 왔을 법한 상황이다.
무턱대고 남의 아이를 바라는 무책임함
“아니, 본인들이 키워주실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대책 없이 아이를 강요하시는 거야?”
이미 첫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있는 내 친구에게 그녀의 시어머니는 매일같이 전화해 둘째를 가지라고 종용하고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스트레스지만 감정 이입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자녀계획을 부부 당사자만큼 늘 최대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아이는 없지만 끊임없이 고민을 반복하고 있기에 만약 누군가 그렇게 우리의 자녀계획을 정해주려는 태도로 나온다면 제대로 심사가 뒤틀릴 것 같다. 아이를 도맡아 돌봐주실 것도, 그렇다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표 나게 해 주실 것도 아니면서 어쩜 그렇게 당당하게 손주를 요구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맙소사, 내가 동생에게 바라는 바가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 동생이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니, 사실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각 잡고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내가 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가정이 있는 내가 내 남편을 팽개치고 파리에 가서 애를 봐줄 수 있겠나 아님 동생네 커플이 숨통이 트일 만큼 큰 물질적 지원을 해줄 수 있겠나.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카’를 바라고 있었다. 그저 나도 나의 금쪽같은 외조카가 갖고 싶고, 엄마 아빠에게도 손주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100% 감상적인 이유로 말이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는 동생에게 한 번도 아이 계획이 있냐고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옳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지 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어여쁜 프렌치 혼혈 조카의 고사리 손을 잡아보는 상상을 한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삶
만약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온전히 우리 부부의 힘만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진 다음, 그에 수반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서까지 두 분을 자유롭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시어머니는 상견례 자리에서(왜 하필 그날 그 자리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나는 애는 못 봐준다”라고 선언하셨다. 결론적으로는 시어머니의 김칫국 발언이었던 셈이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그냥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넘겼지만 나는 그 순간 결심했다. 손주를 케어하는 일이 자녀들이 결혼하기도 전에 발 뺄 만큼 고된 것이라면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절대 그 부담을 지우지 않으리라. 결혼하고 나서 겪어보니 어머님의 생활은 손주를 돌보는 일과 양립될 수 없었다. 어머님은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나무를 다듬으며 가구나 조형작품을 만드는 일을 진심 즐기셨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그렇게 몰두할 거리가 있다는 것은 수입을 떠나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일만으로도 매일같이 활력이 넘치니 남(며느리 포함)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쏟을 여력도 없다. 비슷한 연배의 우리 부모님이 아빠의 은퇴 후 일상을 무료하게 느끼는 모습을 보니 어머님의 취미를 더욱 응원하게 된다. 게다가 그런 즐거움을 내가 손주를 봐달라는 명목으로 빼앗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어머님께 바라는 것은 우리가 도저히 책임져 드릴 수 없을 노후에 대한 대비밖엔 없다.
우리 엄마는 아빠의 은퇴로 집안의 수입이 끊긴 시점부터 용돈벌이라도 하고 싶어 했다. 굳어가는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평생 안 하던 운동을 이제와 굳이 돈을 내고 다니고 싶지도 않다며 집 근처 공원이나 한강을 산책하기도 하지만 그걸로는 활동량이 충분치 않았다. 만약 내가 아이를 낳아 맡기고 베이비시터에게 주는 만큼의 돈을 엄마에게 준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돈 벌면서 하는 노동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상상을 구체화하기 전에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엄마는 체력이 너무 약하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깡(이라 쓰고 ‘성질머리’라고 읽는다)으로 이 악물고 버텨내는데 그러고 나면 꼭 며칠 씩 앓아눕는다. 나와 유럽여행을 했던 40일 동안 엄마가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까웠다. 물론 엄마는 한국에 돌아와 심한 몸살로 일주일을 고생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시름시름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외벌이로 우리 가정을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양가 부모님 도움 하나 없이 우리의 노후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자명한 이 상황에서 스스로 식솔을 늘리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 아닐까?
확신이 없어서 핑계를 찾는 건지도
“우리는 애 없이 6년을 살았는데 모아둔 돈이라고는 고작 차 한 대 살 정도밖에 안돼. 내 나이 이제 마흔인데 이게 말이 되니? 같이 즐겼으니 나도 할 말은 없지만 아이까지 건사할 자신은 없어. 네가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면 작년에 그렇게 긴 여행을 권유하지도 않았을 거야.”
남편이 차갑게 말했다. 나는 반복되는 고민에 지쳐 운명에 맡겨보자고 운을 뗐을 뿐이었다. 시도해보고 아이가 생기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그냥 다행이다 생각하자고. 하지만 남편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를 낳는 문제를 뽑기처럼 운에 맡기고 싶은 생각도, 대책 없이 저지르고 혹시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말한다. 신생아를 키우는 데에는 생각처럼 큰돈이 필요치 않다고. 교육을 시킬 나이가 될 때까지 조금씩 모아두면 된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외벌이로 지내다 보니 걱정했던 것만큼 궁핍하지 않았다. 우리 둘이 쓸 돈은 항상 있었고, 생활이 달라질 건 없었다. 다만 모을 돈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뿐. 이제와 생각해보니, 왜 둘이 벌 때는 돈을 못 모았을까 싶다. 지금처럼 생활했다면 내 월급은 온전히 모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미스터리다. 그렇다면 아이가 생겨도 어떻게든 살아지지 않을까? 그에 더해 지금도 어쩌면 더 많이 돈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살면서 때로는 일단 저질러보는 것도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아이를 정말 더 간절히 원했다면 경제적인 문제 따위는 얼마든지 극복해보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의 자유와 여유를 여기에서 더 양보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둘 뿐 아니라 부모님의 노력까지 가불 해가며 지속해야 할 기약 없는 육아의 굴레를 스스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족하지 않은 삶. 하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삶.
우리는 지금 그 삶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
만약에 아이가 찾아온다면, 그 아이에게만큼은 꼭 족한 삶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 욕심이 두렵고 부담스럽다. 그래도 혹시 우리에게 올 생각이라면 그래. 나는 각오는 되어 있어. 그러니까 아직은 도망가지 말으렴. 만약 네가 우리를 선택한다면 아빠는 엄마가 설득해볼게.
그리고 하나만 기억해주렴.
내가 스스로도 스스로를 끝내 믿지 못하는 엄마였음을.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줘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