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시간을 함부로 쓰지 마세요
오랜만에 들어간 페이스북에서 친절히 알려준 '9년 전 추억'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뜬 사진을 보았다.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앳된 모습이었다. 매일 옆에서 보는 얼굴이라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젊다. 턱선도 더 날렵하고 피부도 건강하다. 반팔 티셔츠 소매 끝에서 이어지는 팔뚝이 지금보다 더 두툼하고 힘 있게 느껴진다.
우리는 운명공동체
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생리주기가 옮는다는 속설이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떤 것이든 닮아가게 마련이라는 뜻이겠지. 부부도 함께 있을수록 많은 것이 닮아가는 것 같다. 위아래로 5살 이내 터울의 부부라면 직장에서 승진해가는 속도도 얼추 비슷하고 가족 대소사도 비슷한 시기에 겹치고, 취향을 공유하면서 점점 함께 좋아하는 것도 많아진다. 체력의 변화에도 서로 공감할 수 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링클케어 화장품을 찾는다.
그렇게 늘 내 언저리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저 뒤에서 뾰로통하게 멈춰 서 있는 걸 보게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행동이 남편의 당장의 기분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모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분명 동의를 구했으니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하며 살고 있다고 위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이 동의해줬던 일들이, 남편으로서는 ‘함께’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늘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내가 혼자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을 때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을 미루고 싶다고 했을 때, 회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자신의 몫인 ‘반대할 권리’를 내려놓았다. 주변에서는 결혼 잘했다고, 남편 잘 만났다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었고 나는 원하는 대로 하면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특혜를 누렸다.
하지만 나는 그의 결정에 있어 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을 몰랐다. 이직을 한다고 할 때마다 왜 멀쩡한 직장을 옮기냐고 사서 고생한다며 타박했고, 회사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나의 생존권 위협을 들먹이며 불안하게 하지 말라고 윽박 했다. 탄탄한 기둥 같은 남편이 흔들리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가 아닌 ‘우리’의 삶을 먼저 떠올렸고, 나에게 있어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남편의 안정적인 커리어였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쌓아 올린 운명공동체는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균형을 잃어갔다. 남편이 나에게 건네줬던 벽돌을 너무 내 기둥 쌓는데만 써 버린 탓이었다. 내가 쌓은 기둥은 그야말로 나의 추억과 행복의 저장고가 되었지만 가정이라는 무거운 건물을 지탱할만한 내공은 지니고 있지 못했다.
결국은,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로를 가장 잘 안다는 점은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가끔 사소한 일로 시작된 싸움에서 상대를 녹다운시키려면 어떤 말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편은 내가 친구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을 때 고민상담을 한답시고 얘기한 에피소드를 들먹이며 "네 친구도 너의 그런 점 때문에 힘들어한 거잖아?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고!"라고 말하는 식이다. 나는 자기를 믿고 한 얘기를 이렇게 치졸하게 써먹다니. 그럴 때는 다시는 남편에게 내 약점이 될만한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하루는 남편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나는 네 부모가 아니야. 그러니까 나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마. 나도 너한테 기대고 싶을 때가 있고, 내 맘대로 하고 싶을 때도 있어. 하지만 나도 알아. 너와 내가 입장이 다르다는 걸. 그러니까 내가 힘들어할 때는 그냥 좀 내버려뒀음 좋겠어."
그날 나는 또 남편 앞에서는 그럴싸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돌아서서 남편이 자는 동안 혼자만의 복수를 꿈꿨다. 호텔 앱을 검색하며 지금 짐 싸들고 집을 나가버릴까, 아님 내일 퇴근하면 이혼 서류를 들이밀까 온갖 궁리를 했다. 왜 항상 대인배처럼 굴어놓고 뒤돌아서서 나로 하여금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 걸까. 야속했다. 내가 사라져 버리면 그제야 나도 많이 억울한 걸 참아가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을까? 물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려서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분한 마음이 며칠을 갔다. 화해를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시덕거렸지만 늘 마음 한 켠에는 내가 졌다는 피해의식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남편 역시 손해 보는 느낌을 하루 이틀 새에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면, 그중 얼마쯤은 자신에게 양보도 해주고 가정을 위해 스스로 포기하기도 할 것으로 알았겠지. 하지만 나는 언제나 곧이곧대로 말하고 듣는 타입이라 남편이 동의해준 모든 일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뒤늦게 영화 <스타 이즈 본>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결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부이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감정선이 한 번에 툭. 하고 맥이 끊기는 허탈한 반전이었다. 앨리가 벽에 걸린 액자를 손으로 부수고 바닥에 던지며 악을 쓸 때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남편에게 하고자 했던 복수의 방법들이 어쩌면 이 정도로 잔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니 하지도 않은 일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반대로, 남편이 내 곁을 떠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한 번도 가정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나는 또 그렇게 내 생각만 했다. 우리 가정을 떠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고. 남편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 만으로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한 아내인가.
지난 주말, 친구들의 청첩 모임에 다녀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길래 남편에게 우산을 가지고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저 멀리서 총총 거리며 뛰어오더니 시야에 내가 들어오자 무장해재된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심장이 저릿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아무런 계산 없이 그대로 내보이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같은 집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싸우고 나면 그동안 좋았던 순간들이 모두 배신당한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이런 순간들이 가지는 힘이 내가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 커져버린 것을 깨달았다. 이 순간 하나로 헤어지고 싶을 만큼 미웠던 순간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처럼, 언제 시부지기 다시 플러스로 채워졌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감정의 부채가 청산되었다.
부부라는 마음의 안식처
부부 사이라는 것은 마치 '실거주 주택'과 같다. 물이 새고 난방이 고장 나더라도 내 한 몸 뉘이기에 이만큼 편안한 곳이 없고 막상 다른 집으로 옮기자니 이윤보다는 손해가 먼저 점쳐지는 그야말로 '부동산' 같은 존재다. 처치곤란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더라도 처치 후 딱히 뾰족한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이 들고, 추억이 쌓이고 이제는 떠나기 싫은 나만의 보금자리가 되어간다.
내가 남편에게 가불한 기회들로 쌓아 올린 기둥을 우리 가정의 인테리어 구심점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해 그동안 내가 혼자 했던 모험을 같이 하는 것이다. 남편이 자신의 기둥을 만들어 갈 때, 내 기둥의 소재와 색채에 영감을 받아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도록. 나 또한 실질적인 기능을 하는 기둥을 다시 쌓아 올릴 시간인 것 같다. 다시 경제활동을 하고, 남편의 커리어뿐 아니라 꿈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도록 마음의 주춧돌을 세우려고 한다.
남편의 환한 웃음이 증명해준 100퍼센트 자발적인 나와의 공생에 보은 하기 위해, 앞으로의 9년은 그에게도 희생보다는 희열로 기억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요즘 세상에, 아무리 부부여도 내일 당장 헤어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더 이상 남들 눈을 의식하며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시대에 부부로 산다는 것은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순전히 당신이 좋아서, 당신과 함께 있는 내가 좋아서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 조건 없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9년이나 걸렸다. 기다려준 남편에게 고맙다.
내 마음이 기거할 든든한 집. 만기 없는 평생 임대 주택 같은 사이. 앞으로 한 동안은 매물 없음이다. 이혼으로 사회에 환원할 마음 따위 없다. 오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남편은 앞으로도 9년, 20년, 50년, 내 옆에서 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