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하나뿐이야
분명 아직 있는 것 같은데.
희미하게 무언가 보이는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은
이제 내 한쪽 눈꺼풀과 안구는 없다고 했다.
깨끗하게 없애버렸다고 했다.
수십 수백 번 결심하고 다짐하며 받은 수술이지만,
수술 전보다도 후가 더 현실감이 없는 건 왜일까.
나, 너무 두려워.
수술을 마친 지 이틀째. 누워만 있으면 몸이 그대로 굳어버릴 것만 같아서, 링거대를 붙잡고 천천히 앉는 연습을 시작했다.
"꽤 움직이시네요. 이 정도면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되겠어요.
젊어서 회복이 빠르시네요. 다행이에요. "
희귀암에 걸리고 나서 듣는 다행이라는 말,
운이 좋다는 말만큼이나 묘하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암 병동에 누워 있는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중환자 집중 치료실에서 일반 병실로 돌아왔다.
내가 돌아온 방은 안과가 아닌 두경부외과 병실이다. 수술 날짜를 정하던 날, 안과에는 병실도, 의료진도 여유가 없으니 규모가 큰 두경부외과 병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 거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때는 설암, 갑상선암 같은 두경부암이 흔해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하지만 입원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안과 암 환자는 무척 드물어서, 전용 병실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암에 걸리면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 안에서나 고독감을 느낄 줄 알았는데, 눈꺼풀암에 당첨된 나는 암 병동에 들어와서도 그저 외롭다. 그놈의 희소, 희귀, 예외…
침대에 누워있으면 그 외로움이 목을 죄어 오는 것만 같아서, 무작정 병동을 걷기 시작했다.
얼굴 부위의 암 환자가 가진 유일한 장점은, 얼굴은 만신창이일지언정 일단은 걷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머리가 눈을 잃은 쪽으로 기울고 금방 피로해져서 걷기 버거웠지만, 조금씩 거리를 늘리면서 연습하니 제법 멀쩡한 척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술 후 달라진 감각과 몸의 반응에 집중하면서 걷다 보면, 내 인정하기 싫어도 '이제 정말 눈이 하나뿐이구나'라는 느낌이 온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병동 산책을 나설 때마다, 꽤 많은 환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 얼굴들에서는 희로애락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이거나 음울한 표정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설령 지금 당장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온다 해도 누구 하나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걸어 나갈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암과 동행한다는 것, 암을 만나서 달라진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걸까.
입원 9일째 되던 날. 수술 부위만 가리면 아픈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몸을 편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입원 예정 기간은 2-3주였지만, 혼자 먹고, 걷고, 씻을 수 있으면 퇴원하셔도 됩니다. 답답한 병동보다 퇴원하는 게 회복에도 좋을 수 있거든요.
어떠세요. 내일 퇴원하시겠어요? "
'네, 이제 조금은 나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아요.'
"네, 퇴원할게요."
퇴원하는 날 아침, 입원 첫날에 보고는 잊고 있던 옥상 정원에 나가 보았다. 사람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꽃을 만지고, 병원 밖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보고 따라 했다.
'입원하던 날, 며칠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었는데… 나는 지금 웃음도 울음도 없는 얼굴로 이곳을 걷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