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와내용물제거술
기다려지지는 않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날.
이제 괜찮다고, 다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두렵고 무서운 날.
.
.
.
.
.
.
.
.
그날이 왔다.
암 병동에 입원하는 날이.
<환자 본인 이외 출입금지>
암 환자의 면역력 저하를 고려하여, 코로나19 이후로 입원 환자 본인 이외의 출입을 전면 금지합니다.
암 병동에는 환자 자신만 들어갈 수 있다. 보호자도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다.
병동 문이 열리면,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병동을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담당 간호사가 병실로 안내해 주었다.
"창문 쪽 자리로 배정됐어요. 날씨가 좋아서 저기 바다도 보여요.
운이 정말 좋으세요. "
희귀 암에 걸리고 나서 듣는 운이 좋다는 말.
참 묘하다. 그런 운이 있다면 다른 곳에 쓰고 싶은데.
2주 혹은 3주 동안 써야 할 4인실 창문 쪽 구석 자리, 하나의 세면대와 화장실. 큰 수술인 만큼, 비용이 들더라도 1인실로 할까 고민했지만, 안과 간호사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오히려 1인실에서 우울증세를 보인 분들이 무척 많아요. 고독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인실을 추천해요."
같은 병실의 한 명은 어딘가 괴로운 듯 쉴 새 없이 신음을 하고, 두 명은 목에 달린 호스 때문인지 구역질과 기침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시끄럽거나 싫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
간단히 짐을 풀고, 병동을 둘러보았다. 병동 여기저기에는 환자를 위한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넓은 휴게실, 독서 공간, 옥상 정원… 며칠 후의 나는 삶의 의지로 가득 찬 얼굴로 이곳들을 이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커튼을 닫고 병실 침대에 틀어박혀 있을까. 나는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일찍이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유튜브를 켰다가, 책을 펼쳤다가…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다시 휴대폰을 들고, SNS에 스토리 하나를 올렸다.
'또 다른 웃는 방법을 찾아서 돌아올게요'
아침이 밝았다.
내 평생 두고두고 회자될 2025년 4월 8일,
안와내용물제거술을 받는 날.
SNS에 올린 스토리 때문인지, 여러 지인들에게서 DM이 와 있었다. 하지만 확인도 답도 하지 않았다. 돌아올게요라고 했으니까, 잘 돌아오게 되면 답해야지.
병동 앞에는 새벽부터 바삐 집을 나섰을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울음 참기 시합이라도 하듯 아랫입술을 깨문 채 말없이 수술 센터로 이동했다.
자칫하다간 눈물의 수술이 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다녀올게! "라는 말을 던지고 도망치듯 수술실로 들어갔다.
"聞こえますか? 目をあけてみてください "
(들리세요? 눈을 떠 보세요)
희미한 연기 속에 서 있는 저 두 명은 저승사자인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의사 선생님과 남편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어요. 신경도 다 살렸습니다 "
"모모야, 정말 고생했어. 고마워 "
힘을 내어 뭐라고 대답을 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처음 보는 방에 와 있었다. 침대 옆에는 삐-삐- 울려대는 기계들이 놓여 있고,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를 서너 명이 내 몸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호스와 링거를 체크했다.
"저기… "
"깨셨네요. 여기는 중환자 집중 치료실이에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일반 병실로 옮길 거예요. "
의학 드라마에서나 봤던 ICU였다.
그런데, 수술한 건 얼굴인데 몸을 못 움직일 게 있나?
...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에 힘을 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24시간을 누워 계셔서 몸이 말을 안 들을 거예요.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필요할 때는 너스콜 누르세요. "
24시간? 저기 벽시계가 가리키는 9시가 아침 9시였어?
그렇게나 많이 잤는데, 난 왜 아직도 졸린 걸까.
그때부터 꼬박 6시간이 넘도록 잤다가 깼다가를 반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다 깨서 "여기가 아파요", "불편해요"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저녁쯤이 되어서야 손과 팔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내 눈은?'
천천히 손을 들어서 얼굴에 대 보았다. 얼굴 반쪽을 무언가로 단단히 고정해 놔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수술을 받은 오른쪽 눈이 살짝 떠지는 것 같기도 하고, 희미하게 앞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게, 안구를 남겼다는 의미였을까?
열어보니 종양이 작아서 눈꺼풀 일부만 제거한 건가?
아니면 신경을 살리는 재건 수술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아니면… '
한참 나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병실로 들어왔다.
"컨디션은 어때요? 아직 몸이 많이 무겁죠? "
"네… 아직… "
"오른쪽 눈꺼풀과 안구는 깨끗하게 제거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느낌이 들겠지만, 서서히 적응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