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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걷는다, 오늘도

by 모모


휴, 다행이다. 밤새 쏟아지던 비도 그쳤고 노면도 거의 말랐으니까 걷는 데에는 문제없겠어. 오늘도 먼 길로 돌아가려고 하거든 예쁜 꽃들이 줄 서 있는 샛길로 유인해야지. 어린이집부터 역까지 전력질주하면, 어제보다 하나 빠른 전철을 탈 수 있을 거야!


매일 나서는 출근길이 이렇게 비장할 일인가. 전장에서 쓸 총을 닦기라도 하듯 꽤나 진지하게 신발 끈을 맨다.


목적지까지는 1.3km. 어른 걸음으로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동네방네 참견쟁이 꼬마와 함께면 삼사십 분은 기본이고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날도 많다. 그나마 걷는 건 운동이라도 되지, 발 한 걸음에 말 세 마디를 내뱉는 녀석에게 일일이 대꾸하다 보면 다리보다 목이 더 아프다.


"여기 사는 언니, 자전거를 새로 샀나 봐! "

"자판기에 있던 사과주스 그림이 바뀌었네."

"저 가게 할아버지, 어제 옷이랑 똑같다. 그치?"


너는 기억력이 좋은 거니, 오지랖이 넓은 거니?


계획대로 움직여도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출근길이지만, 나는 오늘도 걷기를 택했다.

아무리 부산스럽고 시답잖아도 내 한 몸 다 바쳐서 열심히 반응할 테니, 제발, 부디, 우리 아이가 조잘조잘 말할 수 있게만 해 달라고 빌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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