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골프를 배우지 않은 이유
아빠! 바다가 고향인데
왜 그렇게 수영을 못 해!
남편! 그렇게 수영해서
내가 물에 빠지면 구해줄 수 있겠어?
그렇다.
내가 태어난 곳은 집에서 100m만 걸어가면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중1까지 살다가 혼자 도시로 유학을 갔다. 부모님은 여전히 그곳에 계시고, 우리가 육지 땅을 밟는 것만큼 평생을 바다 땅을 밟고 사셨다.
하지만 나는 수영을 못한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박태환처럼 멋지게 물을 가로질러 목표지점까지 가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닷가에는 자유형, 배형, 평형, 접형의 영법을 배울만한 수영장이 없다. 만약 있다면 당연히 망했을 것이다.
내 수영 모습은 '미래소년 코난'이 아니라 그의 친구 '포비'와 비슷하다. 머리가 물 위에 항상 떠 있고 손과 발을 요란하게 휘두르는 그래서 내가 수영을 할 때 물장구 때문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 그런 수영이다.
어머니는 큰아들인 내가 바닷가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바다는 매우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가 고향인 어머니는 바다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많이 보았단다. 특히 내가 초등학생 때 바로 집 앞바다에서 동네 꼬마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모습을 본 이후부터 유독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너 짠물(바다)에서 물놀이했냐? 안 했냐?"
"아~아~ 안 했는디요."
"엄마한테 거짓말하면 죽는 다잉. 어디 윗도리 확 벗어봐! 혀로 핣아불면 금방 알 수 있응께"
그랬다.
어머니는 내가 바다에서 물놀이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내 팔을 당신의 혀로 핣아보며 확인했다. 짠내가 나면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속이려고 눈에 보이는 팔, 목덜미, 종아리만 민물로 씻는 꾀를 냈었다.
하지만 평생을 짠내나는 바다에서 산 어머니를 이런 어설픈 잔 꾀로 속일 수는 없었다. 마치 사냥을 끝낸 맹수가 코를 킁킁 거리며 고기를 뜯는 것처럼 어머니는 윗도리를 벗기고 나의 등을 핥았다. 당연히 손이 닿지 않는 등을 씻을 리 없었던 나는, 고기잡는 그물질 때문에 남자보다 더 굵은 당신의 손바닥으로 기어이 등짝 스매싱을 맞아야만 했다.
작년 11월부터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수영 강습을 시작했다. 기필코 아내와 딸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는 각오와 함께.
"저기요? 인터넷으로 수영복을 주문했는데 배송이 안 돼서요. 혹시 오늘만 통 넓은 해수욕장 수영복을 입어도 되나요?"
"(단호하게) 안 됩니다. 강습용 수영복을 입어야 합니다."
"(실망)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오겠습니다."
"잠깐만요. 오늘 강습 첫날인데 그냥 가시기 뭐 하니까. 여기 분실물에 있는 남자 수영복을 입고 하는 것 어떨까요?"
"아~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실물 바구니에 있는 남자 수영복은 보기에도 민망한 초미니 쇼트펜츠만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거라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중에 알았다. 이렇게 짧은 수영복은 어느 정도 수영 경력, 소위 '수력(水歷)이 오래되어 실력이 출충한 분들이나 입는 것이라는 것을. 정해진 룰은 아니지만 오늘 처음 수영강습을 받는 내가 입기에는 실내 수영장 관습(?)을 어기는 행동이었다.
민망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순간, 물속에 있는 회원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우와~ 완전히 수영 잘하는 고급자 코스의 베테랑 회원이 들어왔나 보다."
그때까지 나를 왜 쳐다보는지 몰랐다. 그냥 옷이 민망할 뿐이었다. 수영강사분이 당연히 내가 중급 이상의 실력자인 줄 알고 고급자 코스로 나를 안내했다. 하지만 오늘 처음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내 수영복을 보더니 의아해했다.
나는 그날 누구 것인지도 모를 쇼트팬츠의 수영복을 과감히 입고 초급자 코스에서 노란색 킥판을 들고 열심히 '음파~음파~'를 하면서 발차기를 했다.
드디어 어제 수영강습 6개월 만에 초급자 코스를 떼고 중급자 코스에 들어갔다.
오리발을 신고 하는 수영은 정말 신세계였다. 마치 내가 물 만난 물고기가 된 듯했다. 접영도 오리발을 신고 하니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급자 강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초급은 수준 차이가 나서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은데 중급은 레일을 완주하고 쉴 틈 없이 바로 다음 수영을 해야만 했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내가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또 다른 이유는 심각한 불면증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쉽게 잘 수가 없었다. 잠이 들더라도 금방 깼고 다시 잠들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실내 수영장을 다니면서부터 불면증이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잠들기 힘들지만 잠이 들면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였다. 좋은 점이 또 있다. 생각이 많은 내가, 물에서 수영하는 순간은 온전히 이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물[水]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를 느낀다고나 할까?
사십 대부터 주변에서 골프를 배우라고 권유했다.
나이 들면 부부가 함께 여가를 보내는데 골프만 한 게 없다고 하면서. 퇴직 이후에도 건강한 삶을 위해 골프가 좋다고 하면서 갖고 있던 골프 장비를 준 사람도 몇몇 있다. 하지만 난 골프가 싫다고 잘라 말하고 지금껏 배우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 딸만 두고 골프 배운다고 연습장과 골프장 다니기가 내키지 않아서였다. 20대, 30대, 40대 시절 이것저것 활동하고 배운다고 가정에 너무 소홀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소홀했고,
이후 교수가 되겠다고 시간강사와 학회 활동으로 소홀했고,
장학사 준비한다고 소홀했고,
장학사가 되어서는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일을 한다고 가정에 소홀했다.
골프를 한다고 가정에 소홀하는 건 아니지만 내 성격에 대충 배우지는 않을 테니 애초에 '싫다'라고 하는 것이 나았다.
다행히 수영은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아내가 적극 권했다.
아내와 약속했다. 우리 둘 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함께 배우자고. 골프 말고 수영을.
하지만 아내는 물속을 끔찍이도 무서워한다.
* 제가 실내수영장에 다녀야겠다고 마음먹는데 도움을 주신 분이 있습니다. 제 브런치의 구독자이면서 관심작가이신 '이순일' 수영인프루언서 컨설턴트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