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를 머금은 장작으로 불멍을 하면서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불멍을 좋아하는 딸에게...
유난히 불멍을 좋아하는 딸에게 아빠가 사람 사귐에 대해 한 마디 하고자 한단다.
엊그제 캠핑장에서 그 비바람 치는 날, 캠프화이어의 불멍을 포기할 수 없다는 딸의 간절한 부탁으로 불피우기가 그렇게 어려웠음에도 아빠는 기어이 너를 위해 불을 피우고야 말았고, 그리하여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불멍을 어린이날 선물로 줄 수 있음에 뿌듯했단다.
흥이난 아빠는 장작불 타오르는 모습이 마치 사람 사귐과 비슷하다며 너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할 때,
"아빠 이 분위기에서 그런 꼰대 같은 말을 꼭 해야 되겠어?"
라는 한 마디에 깊은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단다.
그날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거였단다.
딸아! 아빠는 네가 물기를 머금은 젖은 장작 같은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아니? 젖은 장작은 불피우기가 매우 어려운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
라고 하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사람을 사귈 때는 젖은 장작 같은 사람이 좋을 수도 있단다.
마른 장작은 불이 금방 붙고 활활 타오르다가 어느새 금방 꺼져버린단다.
젖은 장작은 불이 잘 붙지 않지만 일단 피어나면 은은하게 타오르다가 서서히 꺼진단다.
사람 사귐도 그렇단다.
마른 장작처럼 겉모습은 멋스럽지만 삶에 경험과 지혜가 부족하여 단조로운 사람은 쉽게 만나고 불꽃같이 사귀지만 열정이 금방 사라져 이별도 쉽게 이루어진단다.
하지만
젖은 장작처럼 다양한 삶에 경험과 지혜를 풍요롭게 가진 사람은 만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단 사귀기만 하면 오랫동안 지속되고 열정이 쉬이 커지지 않아 관계가 오래간단다.
마른 장작은 가벼워 불쏘시개 없이도 눈을 맵게 하는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고 혼자서도 잘 탄단다.
젖은 장작은 무거워 불쏘시개 없이는 불을 피우기 어렵고 연기도 많이 나지만 불이 붙으면 잔잔하게 오래 탄단다.
사람사귐도 그렇단다.
마른 장적처럼 스스로 잘나서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사람은 사귀더라도 상대방을 가볍게 여겨 상처를 줄 수 있단다.
하지만
물기를 먹은 장작처럼 혼자보다는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귀하게 여겨 모든 걸 품어줄 수 있단다.
마른 장작이든 젖은 장작이든 그 불을 끌 때는 자연스럽게 꺼지도록 두어야지 물과 흙을 이용해서 강제로 끄면 안 된단다. 이렇게 꺼진 장작은 깨끗이 치우기가 매우 어렵단다.
사람사귐도 그렇단다.
쉬운 만남이든 어려운 만남이든 헤어짐은 매우 자연스러워야 한단다. 강제로 하는 이별은 마치 억지로 불을 끈 것처럼 그 후유증이 오래간단다.
마지막으로
마른 장작보다 젖은 장작이 좋더라도 아예 물에 빠진 장작은 불을 땔 수가 없단다.
마찬가지로 삶의 스토리가 너무 화려하고 깊은 사람은 불을 땔 수 없는 장작처럼 타인의 삶을 들어줄 여유가 없어 상대방을 외롭게 만든단다.
그래서 아빠는 마른 장작 같은 사람보다 젖은 장작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한단다.
그날 딸에게 불멍을 하면서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였단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옮겨보니 네 말처럼 분위기를 망치는 꼰대스러운 이야기인 것 같구나.
이럴 때마다 '너는 아빠의 인생 멘토'란 걸 새삼 느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