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고나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불과 6살 만에 황망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막둥이 고양이 뀨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목놓아서 곡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뀨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기도 한다. 그만큼 인정하기 힘든 가혹한 일이기에 반년이 넘은 지금에서도 현실 부정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뀨가 내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았던 만큼 항상 나를 바라봐 줬고 내가 손을 흔들거나 쳐다보면 나한테 안기던 아이였다. 난청으로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대신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기에 조용하던 집이 뀨로 인해 항상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이제 집 안은 고요함과 적막함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조용한 환경에서 작어블 하기 위해 정숙한 환경을 원했지만 살갑게 나를 맞이하며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여준 뀨와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보니 공허하고 외롭다는 감정이 사무치게 든다. 역시 사람이란 간사한 존재인 것 같다.
뀨가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럽다. 상대적으로 어리고 활발했기에 죽음에 이를 정도로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분명 이상 징후가 있었고 병원에 다녀오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뀨가 워낙 유별난 고양이이기에 관심을 받고 싶어 하거나 시샘을 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뀨는 너무나도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로 인해 뀨가 누려야 할 미래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까지 더해지니 죄책감이 더해진 지독한 상실감을 겪고 있는 중이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있다.
다음으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한 부분이 후회스럽다. 뀨가 황망하게 떠나고 다음 날 화장을 하러 갔는데 영정 사진으로 쓸만한 사진을 찾기 힘들었다. 뀨보다 먼저 우리 집에 온 삐쥬와 뚱이 같은 경우 어릴 때부터 고해상도 미러리스 카메라로 주로 사진을 찍었지만 뀨는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활용해 사진이나 영상을 찍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쉽고 편하며 익숙한 기기를 사용한 것인데 결과물을 보면 뀨의 생전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해서 이러한 선택을 한 걸 후회했다. 실제 사진을 보면 윤기가 가득한 털이 한 올 한 올이 뭉개지지 않고 눈동자가 선명하게 살아 있는 모습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었다. 특히 어릴 때는 단모에 가까웠지만 성묘가 된 후 노르웨이 숲처럼 턱에 갈기가 생기고 전체적으로 털이 수북해지면서 장모종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러한 반전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해서 상당히 아쉽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뀨라는 아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가족 중에서는 어머니가 뀨와 많은 교감을 나누었고 지인 중에서는 어릴 때 몇 번 본 게 다였다. 죽기 3일 전에 업무적으로 집에 내방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뀨는 어김없이 활발하게 손님을 반겨줬다. 친화력 만렙 고양이를 자랑하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부끄럽다. 그 때라도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병원에 갔다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령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고 해도 뀨를 잃은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추모할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뀨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너무 극소수이기에 이와 같은 한스러움이 남지 않았나 싶다. 어리석은 고양이 집사의 경험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는 후회 없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