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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Oct 18. 2024

별명 부자였던 나의 고양이...

별고나 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6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허망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막둥이 고양이 뀨와 함께 한 추억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뀨와의 추억을 잘 보여주는 게 바로 별명이 아닐까 싶다. 가히 별명 부자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불렀는데 그만큼 다양한 매력을 가진 아이였다. 안타까운 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난청이라서 내가 부르는 호칭을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고양이들은 본인의 이름을 부르면 나를 쳐다보거나 꼬릴 흔들거나 귀를 쫑긋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뀨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자고 있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을 때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면 나한테 안겨서 무자비하게 꾹꾹이를 하거나 아니면 사정없이 핥아줬다. 


지난 이야기에서 언급했듯이 뀨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거의 1년 정도 시간이 지난 뒤였다.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계속 미루고 있다가 내 이름 끝 자에서 따와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년시절은 기억하고 싶은 추억보다는 치유해야 하는 상처가 많았던 거 같다. 자세히 언급하긴 힘들지만 부모님 같은 경우 불화가 상당히 심한 편이었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충격적인 일들을 겪었다. 그런 부분이 쌓이고 쌓이면서 사람에 대한 염증을 갖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다 보니 사람과 사회적인 교류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대학교, 군대, 직장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루트를 밟아가면서 사회적 활동을 했지만 내면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쉽게 치유될지 않았다. 아니 치유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성인이었지만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던 나는 마치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와도 같았다. 


내가 갖고 있던 상처를 치유해 준 건 다름 아닌 고양이였다. 집요하게 꼬치꼬치 캐묻고 오지랖 섞인 참견을 하는 인간의 본성 뒤에는 급 나누기, 편 가르기와 같은 차별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러한 전후 사정에 대해서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저 함께 있으려고 할 뿐이다. 다른 고양이보다 사교성이 좋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여줬던 막둥이를 보면서 참으로 유별난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걸작 '별이 빛나는 밤'을 좋아했기에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래는 이걸 이름으로 확정하려고 했는데 별이라는 이름이 혹시나 이별로 연결될까 봐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는데 그게 좀 오래 걸린 것이다.


별이라는 아명과 뀨라는 본명 사이에 다양한 별명이 있었다. 막둥이라고도 부르기도 했고 막누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원래 막무라고 불렀는데 이는 막무가내를 줄인 것이다. 워낙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였기에 사춘기 시절인 1년 간은 사고뭉치였다. 모든 게 다 신기해 보였던 것인지 무선 청소기가 구동될 때도 마치 풍차를 향해 달려간 돈 키호테처럼 용감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청소기를 무서워하던 다른 고양이와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아마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난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막무라는 말이 계속 부르다니 보니 좀 더 쉽게 발음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막누로 변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별명이나 이름에 신경을 쓴 만큼 좀 더 뀨의 상태를 신경 썼어야 했다. 어릴 때처럼 함께 잠을 청하며 좋은 기억을 심어줬어야 했다. 나의 품에 안길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했던 아이였는데 그걸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그러한 경험들이 어렸을 때 얻었던 상처들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었는데 나는 그걸 쉽게 인정하지 못했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막둥이 고양이 뀨의 빈자리를 너무 크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뀨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더 크다는 걸...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면서 이제야 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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