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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Aug 19. 2023

거절이 무서워

외유내강, 나를 방치하는 나


겉으로는 할 말 다하게 생겼는데 속은 순둥이야.  

제일 친한 베프 S가 나를 보며 다른 친구한테 말했다.


여리여리하고 잘 웃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똑 부러지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서 겉으로는 부드러워도 속이 단단한 외유내강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S와 다르게, 내 생각을 얘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아서 외강내유로 표현되었던 나.


S처럼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이야기하는 걸 닮고 싶었지만, 나마저도 외강내유라는 표현이 나를 대표한다는 생각에 갇혀 그 안에서 벗어나는 게 어려웠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디에선가 글을 본 적이 있다. 인간관계 7:2:1의 법칙이라고, 10명 중 7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날 싫어하며 1명은 나를 좋아한다고.


8년 전의 나는, 이 법칙에 대해 알지 못해서 누군가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다 나를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싫어할 이유기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다.



Y샘이 네 얘기를 수선생님한테 안 좋게 한대.



윗년차이자 병동에서 친하게 지냈던 S선생님이 속삭이듯 말했다. 잔잔하게 물처럼 흘러들어온 말은 차가운 얼음송곳이 되어 마음에 꽂혔다. 지금이라면 왜 굳이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거냐고 S선생님한테 물어봤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동떨어진 섬에 표류된 것 같은 기분에 눈앞이 깜깜해졌을 뿐이었다.


왜요? 제가 뭘 잘못했대요..?

얼음송곳에 갇힌 듯 싸늘해지는 몸을 붙잡고 이유를 물었지만 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혼란스러웠다. 이유가 없다는 그 말이 나한테 말 못 할 이유가 있다는 것처럼 들려서 혹시 Y선생님에게 잘못한 게 있었나- 기억을 탈탈 짜내며 떠올렸지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혹시 나한테는 아주 사소한 거였지만 상대방에게는 아주 큰 일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멈추게 되는 건 내가 아는 그분은 평상시 할 말을 가리지 않는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선생님 역시 유일하게 자신에게 편하게 말을 꺼낸다며 예뻐하고는 했었다.


나만 모르는 일. 그리고 무슨 말을 어떻게 전달했는지도 알 수없었지만, 더 소름 끼쳤던 건 내 앞에서 늘 웃고 있었다는 것. 나는 너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하면서.


차라리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이 있었으면 이야기를 꺼내주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라는 생각은 점점 더 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수렁의 끝에서는 늘 내가 무언가 잘못했구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찼고, 다른 선생님과 Y선생님이 속닥거리며 이야기할 때는 혹시나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신경이 예민해지고 또 예민해졌다.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다니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차라리 할 말을 확실하게 하고 그만두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파고든 생각들은 내 자존감까지 갉아먹어서 입 밖으로 더 모든 걸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혹시나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얘기했는데,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얘기하면 어쩌지? 아니, 다른 사람들이 다 안 믿어주면 어쩌지? 내가 그걸 얘기한다고 들어줄까? 지금에야 아니면 마는 거지- 하는 생각에 퇴사를 외칠 텐데, 그 당시의 내 생각의 끝은 그만둔다고 얘기하면 결국 의지박약으로 얼마 일하지도 않고 못 버틴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퇴사하고 싶다는 얘기마저 꺼내지 못했다.


오로지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진짜 조금만 더. 누구라도 나에게 의지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게 채우고 그만두자는 생각뿐이었다. 차라리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했으면 덜했을 텐데, 오히려 그 말은 나한테 사치처럼 다가왔으니 더 뭘 말할 따까. 그저 무언가를 더 기대하고 싶지 않으니, 누군가 내 얘기를 전달할 수 없게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도 담지말자. 그 생각으로 채웠다.


그렇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늘 속에서는 소용돌이치듯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시야가 깜깜하기만 했다. 이때는 정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을 만큼 작아져 있어서 오로지 다른 사람만을 나보다 더 신경 썼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닌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도, 내가 나를 더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니 오히려 나를 더 방치하기 바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기다리던 그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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