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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Sep 12. 2023

저 퇴사할게요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그때 왜 얘기 안 했어?


친구 S의 말에 응? 하고 되물었다. 무슨 소리일까 싶어서 되묻자 네가 올린 글 봤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상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SNS에 내 이야기를 담으면서 언젠가는 누군가는 보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짐작을 하기도 했으니까.


나는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S의 말에 바로 아니라고 답을 달았다. 다만 그때 더 얘기하지 않았던 건 내 마음이 S에게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S는 수선생님께 인정을 받고 싶어 했고, 나는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지쳐있었다. 그래서 수선생님은 S에게 더 알려주겠다는 이유로 모질게 대했었는데 그건 누가 봐도 애정이었다. 내 시야에는 보여서 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괜찮다며, 못난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자존심이라도 지켜야지만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 때니까.


그리고 어느새 희미해져 버린 기억 속의 끝에서는 나는 정말 괜찮았으니까. 아니, 괜찮아졌는지. 괜찮은 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그만둘게요.


근무표를 보다가 참고 참았던 말을 꺼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던 마음이 가득 얽혀 있어서 입 밖으로 꺼낼 때,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던 만큼 밖으로 나온 말은 묵직하게 떨어졌다. 당황스러움의 시선이 나를 향했지만, 나는 그저 내가 낸 용기에 마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을, 1년 하고도 반년이 돼 가는 그 시기에 드디어 꺼낼 수 있었으니까.





참 이상하지.


그때부터는 정말 어떻게 다니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퇴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퇴사를 입에 담은 그때부터 나는 정말 돌아가면서 면담을 했다. 어떻게든 더 다니게 하겠다면서 잡는 그 손길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의미가 없는 그 순간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처럼 남의 일처럼 느껴져서 감흥조차 없었다.


원하는 부분이 있으면 개선해 줄 테니 이야기를 해보라는 이야기들은 정말 한 귀에서 한 귀로 빠져나가듯이 나에게 닿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의미함을 느꼈던 걸까, 선심을 쓴다는 듯 원래도 월급을 올려주려고 했었다며 계속 다니면 더 올려주겠다고 했다.


마음에 닿지 않았다. 월급을 올리고 싶어서 그만둔다고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월급인상에도 회유가 되지 않자 퇴사하겠다는 확실한 마음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기간을 조정하려고 했다. 조금만 더 다녀달라는 그 이야기에도 단호하게 의사를 펼쳤다.


저는 이번 달까지만 다닐게요.





내 퇴사 소식에 병동 식구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나는 더 깊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와 함께 다른 곳에서 배워보고 싶어요-라는 의미 없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S에게는 같이 쉬는 날 맞추는 거 힘들지 않았냐며, 앞으로는 더 잘 맞출 수 있겠다는 이야기만 늘어놓았을 뿐 속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뒀던 마음은 꺼내놓지 못했다.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내 마음속에는 이 정도면 됐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더 이상의 기대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고, 공허한 마음이 차오르면서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아 졌다.


내가 무언가를 어떻게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면 거기에 더 매달려서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았다.


나랑 맞지 않는 것이겠지. 그냥 내려놓자.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왜 괜찮아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뒤로 관계에서 상처받았던 일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던 모든 행동들이 사라지고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을 뿐인데, 그걸 바랐다는 듯. 더 이상 그 안에서 상처받지 않았다.


그런데, 상처받지 않으면 무엇할까.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회복이 되지 않았다. 기대를 안 하겠다는 마음으로 벽을 세워버리고 안으로 숨어버렸는데, 그게 과연 올바른 회복이었을까.


거기다 상처를 냈음에도, 전혀 모른다는 듯 웃으면서 사실은 친해지고 싶었어-라는 이야기를 하는 Y샘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원망조차 생기지 않는 그 허무함에 오히려 뒤도 안 돌아보고 미련 없이 퇴사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퇴사하는 길목에서 한 번은 묻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왜 뒤에서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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