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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벼리 Feb 23. 2022

퇴사 일주일 전, 마음이 심란한 이유

직장인의 프리랜서 도전기 16.

퇴사 날짜를 받아놓고 출근하는 기분이란, 출근 전부터 퇴근하고 싶은 기분이다. 문제는 이 기분이 하루에 그치지 않고 매일 반복된다는 점.


퇴사를 앞두면 왠지 후련하고 가벼운 마음일 줄 알았는데, 막상 퇴사일이 다가오니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한 감정이 물밀듯 쏟아져 당황스럽다. 이런 상태가 왜 지속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미 마음이 떠난 일에 내 시간과 체력을 쥐어짜 내는 것이 힘에 부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회사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고 남은 건 책임감뿐이라, 마음은 집에 두고 몸만 회사에 모셔다 둔 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관성에 의해 일을 한다. 인수인계를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는 책임감만으로.




퇴사 후 다음 스텝을 생각하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니, 무의식적으로 다음 취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천성이 일개미인가? 아님 월급의 달콤함에 중독되어 버린 것일까? 분명 나의 계획은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푹 쉬면서 나를 재정비하고, 프리랜서의 삶을 오롯이 경험해 보는 것인데.


잠시라도 마음을 놓으면, 퇴사 후 재취업을 선택한 이유를 종종 망각하곤 한다. (궁극적으로는 프리랜서가 목표이고, 재취업은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가 보다. 20대 초부터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습관 말이다.




여느 때와 같이 보통의 일상을 보내고, 해가 져서 캄캄해진 집 안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불현듯 지금껏 열심히만 살아온 내가 미친 듯이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뭐라도 해줘야 할 것만 같아 맛있는 저녁을 차려 주었다. 거기에 술도 한 잔 곁들이니 그동안 억눌러 온 감정들이 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서럽던지, 몇 년 동안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 묵은 때까지 씻겨 나가는 듯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나니 한결 뽀송해진 기분, 그리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참 그동안 많이 억누르고 살았구나.




여태껏 살면서 사치 부리지 않고, 빚 한 번 져본 적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들여온 시간과 노력에 비해 남긴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닫던 순간, 현실을 직시함과 동시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던 것 같다.


유일하게 남은 건 경험뿐이지만 경험만큼 값진 게 또 있을까 싶어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든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몸소 배운 것만으로 큰 수확이리라.




많은 돈을 소유했던 사업가가 졸지에 빚쟁이가 되어버리는 일, 천대받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어느 순간 부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일들을 심심찮게 보고 듣게 된다. 그래서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돈보다 사람을 봐야 한다. 돈은 눈에 보이지만 사람의 가능성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 건강이든 사랑이든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결을 같이 한다.


이렇듯 타인을 보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부터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누구보다 나를 잘 보살펴야 한다. 그러려면 내 마음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감정 하나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욱 증폭되는 성질이 있으니 희로애락  어떠한 감정이 올라올 때에는 억누르지 말자.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모두 나만이 경험할  있는 감정이니 깊이 들여다보고,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기쁨, 즐거움과 같은 감정에서는 감사함이 자랄 것이고, 노여움, 슬픔과 같은 감정에서는 치유와 위로가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내가 퇴사를 앞두고 마음이 심란했던 이유가 뚜렷해졌다. 알고 보니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기에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개구리가 뛰기 전 가장 많이 움츠리듯이 성장통도 크게 성장하기 직전에 가장 심한 듯하다. 어쩌면 참 감사한 감정이다. 여기서 자화자찬 한마디 하며 글을 끝맺으려 한다. 심란한 마음조차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 중인 나!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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