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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끝 Jan 22. 2020

믿음과 기대는 다른 문제야

2020년 1월 20일 

믿음과 기대는 다른 문제야


공동체라는 것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이 기독교 공동체였지만 길을 걷다 보이는 교회라는 곳하고는 다른 공동체였다. 동네에 모여 사는 공동체도 있었고 자기들끼리의 대안 마을을 만들어서 교육시스템도 구축한 공동체도 있었다. 대안적인 사회를 구축한 공동체는 매력적이었지만 그곳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했다. 지금 내가 누르고 희열하는 문화를 포기해야지만 편입할 수 있는 곳들이었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거대한 이념 아래 한 몸처럼 살아가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망하면서도 나는 나일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 같다. 아마 그 거대한 이념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화목하지 않았던 가족을 대체하고 싶었던 욕망이었는지, 신학을 현실화하고 싶었던 욕망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에게 이상적인 인간다움을 기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지금 속해 있는 공동체를 찾았다. 느슨한 결속력과 자유로운 선택을 중시하는 이 공동체는 신을 향한 사랑을 중심으로 모였지만 그 외에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곳이었다. 느슨한 결속력과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말은 개인에게는 매력적이지만 다수에게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간의 갈등이 일어나도 개인의 문제이지 공동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두가 성인이기에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는 점. 나는 떠돌이 생활을 멈추고 이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삼년이 흘렀다.


삼년이란 기간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을 믿는 것과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벤져스 : 인티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미래의 펼쳐질 14,000,605개의 경우의 수에서 타노스를 이길 한 가지 방법을 찾았음에도 아이언맨에게 그 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과정을 이끌어 갈 사람이 아이언맨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영화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이언맨을 믿는 것과 아이언맨에게 기대하는 행동이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아이언맨을 믿는 것과 기대하는 행동이 같았다면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 과정을 온전히 설명해서 다른 경우의 수를 방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언맨을 완벽히 믿을 수 없기에 혹은 그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말하지 않았고 극한의 상황까지 흘러가 닥터 스트레인지가 기대했던 행동을 이끌어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무언가가 있다는 말처럼 마음, 생각, 방법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에 사람이 모인 곳에는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마음이야 진정성 있는 사과와 태도에 해결의 실마리가 열리고, 생각이야 끊임없는 대화로 타협의 실마리가 보이고, 방법이야 구성원이 모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면 되지만, 오래 지속된 갈등이거나, 오랜 시간 쉬쉬 했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갈등은 전혀 다른 크기의 문제다. 이건 신뢰의 문제이자, 제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더 이상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하지도 못한다. 그 사람의 말에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끊임없는 자기 해석으로 상대방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 허점을 찾고 또 찾는다.


너무 오랜 시간에 걸쳐 스며든 문제라 자세하게 말할 순 없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신뢰의 문제가 발생했다. 모두가 연결된 문제라서 나도 분노가 일기도 하고 회의감이 솟아나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 거리를 두고 돌이켜보면 이 분노와 회의감이 공동체의 리더가 내가 바랐던 행동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곤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차피 리더가 나에게 바라는 행동을 나도 하지 않는 걸. 그건 내 욕심이야, 

안 되는 사람에게 안 되는 걸 기대하지 말자. 내 복장 터지는 일이야.]


그럼에도 갈등의 골이 깊어져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들이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리다. 공동체는 차가운 건물에 존재의 근거가 있지 않고 사람의 온기에 있기에 사람이 떠나면 그 공동체는 이전 공동체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을 알기에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이 더욱 애틋하다. 이들에게 만큼은 말하지 않아도 내 행동을 예상해주는 기대가 아니라 내가 속마음을 이야기해도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다. 가장 안전한 공동체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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